"위안부 조달"…軍관여·강제성 감추고 피해자 인격 침해

입력 2022-03-29 15:10
수정 2022-03-29 19:15
"위안부 조달"…軍관여·강제성 감추고 피해자 인격 침해

日 고교 교과서 검정 통과 14종 중 제대로 다룬 곳 없어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9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역사 분야 14종에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본질을 제대로 기술한 교과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격해진 가운데 일본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방식으로 교과서 서술과 검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 일본군 위안부 군관여와 강제성 제대로 쓴 곳 없어



연합뉴스가 일본사탐구 교과서 7종과 세계사탐구 교과서 7종 등 14종을 분석한 결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점과 위안부 제도가 강제적이었다는 점을 그나마 알린 교과서는 짓쿄출판의 일본사탐구 1종뿐이었다.



이 교과서는 위안소에 관한 부분에 주석을 달아 "일본군의 관여 아래 설치·통제돼 전역(戰域)의 확대와 더불어 퍼졌다. 일본인 외에 식민지·점령지의 여성이 위안부로서 장병의 성 상대를 강요받았다"고 서술했다.

5종은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면서도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점과 위안부 제도가 강제적이었다는 점 두 가지를 모두 쓰지 않거나 모호하게 기술했다.

"조선인을 중심으로 한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서 전지에 보내졌다"(다이이치가쿠슈사 일본사탐구) "일본의 식민지·점령지 여성 중에는 '위안부'로서 전장에 보내진 사람도 있었다"(짓쿄출판 세계사탐구) 등이다.

이외 일본군 관여를 제대로 안 쓴 교과서가 1종, 강제성을 제대로 안쓴 교과서가 1종이었다.

야마카와의 일본사탐구 교과서는 "전지(戰地)에 설치된 일본군을 위한 '위안시설'에는 일본·조선·중국 등에서 여성이 모집돼 '위안부'로서 일 시킴을 당했다. 강제되거나 속아서 연행되거나 한 예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나름대로 설명했으나 일본군의 관여 사실을 직접 기술하지 않아서 문맥에서 유추해야 한다.

나머지 5종은 아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조차 않았다.

14종을 보면 전반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 국가 권력에 의한 조직적 인권 침해라는 점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고 사실상 성 노예 취급했다는 시각이 투영된 듯한 기술도 담긴 교과서도 있다.

시미즈서원의 일본사탐구 교과서는 "위안부의 조달도 실시됐다"고 썼다. 일본어에서 조달은 '필요한 금품 등을 모두 갖추는 것, 혹은 모두 갖춰 보내는 것'이라는 의미로 통상 사물에 대해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자금을 조달한다', '자재를 조달한다' 등처럼 쓰인다.



◇ "교육 통해 위안부 문제 기억" 고노담화에 비춰보면 미흡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공식 사죄한 고노담화(1993년 8월 4일 발표)와는 비교해 보면 각 교과서의 서술이 어떤 점에서 미흡한지 분명해진다.

고노담화는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일본군의 책임을 언급했다.

아울러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官憲)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당국의 개입도 명시했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하의 참혹한 것이었다",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 나라(일본)의 통치 아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인권침해의 실태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고노담화에서 약속했다.

2012년 자민당 재집권 후 출범했던 아베 신조 내각과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방침을 확인한 바 있다.

현직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작년 12월 언명했다.

하지만 29일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보면 고노 담화의 정신이 충실히 계승됐다고 보기 어려운 양상이다.



검정 과정에서 고노담화와 관련한 설명을 수정한 사례도 있었다.

도쿄서적의 정치·경제 교과서는 고노담화를 발췌해 싣고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받아들여 당시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가 돼 있다"고 부연 설명을 달았다가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아니다'는 지적을 받았다.

도쿄서적은 지적을 받고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담화로,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가 돼 있다. 2021년에 '종군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각의 결정이 이뤄졌다"는 내용으로 설명을 수정했다.

◇ 일본 정부 "'종군 위안부' 대신 '위안부'가 적절" 압박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갈등 사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서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각의 결정을 한 것이 교과서 내용이 부실해진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작년 4월 각의 결정을 거쳐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종군(從軍)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으므로 '종군 위안부' 또는 '이른바 종군 위안부'가 아닌 단순한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를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정부 답변에 맞게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으면 정정 신청을 권고할 수 있다고 하는 등 사실상 압박을 가했고 일련의 과정이 출판사들을 위축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실세로 이번 검정에서 짓쿄출판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썼다가 '학생이 일본군과 위안부의 관계를 오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서 '일본군 위안부'를 '위안부'로 수정하기도 했다.

데이코쿠서원의 세계사탐구 교과서는 "일본 정부는 전후의 배상·보상에 관해 국가 간의 조약 등에 의해 법적으로 해결이 끝났다고 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병사·노동력의 징발 등의 피해에 대한 개인 보상을 요구하며 일련의 재판이 제기됐다. 이른바 위안부 문제도 그 하나"라고 썼다.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한국 법원에서 확정된 상황임에도 '법적 해결이 끝났다'는 일본 정부 입장만 부각해 소송 자체가 조약 위반이라는 인식을 심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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