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강 건너 이웃이 불도 꺼줄 것이라는 미망

입력 2022-03-27 08:05
[특파원 시선] 강 건너 이웃이 불도 꺼줄 것이라는 미망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전문가 회의에서 "우리는 강 건너편에서 불구경만 하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한다.

이번 사태로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러시아의 국력이 소모되고 있으니 중국은 괜히 전쟁에 휘말리지 말고 그냥 지켜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취지다.

반미(反美)라는 기치 아래 국경을 맞댄 이웃 중국과 하나로 뭉쳤다고 생각하는 러시아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질만한 소리다.

조속한 사태 해결을 위해 중국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줄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걸었던 국제사회 일각에서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 신경이 쓰였던지 중국의 관변 경제매체인 중훙망은 인터넷에 공개한 전문가 회의 요약본을 삭제했다.

물론 중국이 국제 여론에 연연하는 국가는 아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회의가 또 다른 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때문에 긴급 소집된 이 날 회의에서 중국이 비난한 대상은 도발의 주체인 북한이 아니라 도발의 대상 미국이었다.

장준 주유엔 중국대사는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한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을 지켰다면서 "그러나 미국은 연합군사훈련 중단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다가 한반도 주변에 전략적 핵무기를 배치해 북한의 안보를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해 새 결의안을 추진하려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계획에 대해서도 "상황을 악화시킬 어떠한 행동도 하면 안 된다"고 강변했다.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토권을 지닌 중국의 이 같은 입장 표명 탓에 이날 안보리는 북한을 규탄하는 언론 성명도 내지 못하고 산회했다.

중국이 북한의 ICBM 발사라는 엄중한 상황이 발생한 직후에도 이렇게 행동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역사적 혈맹 관계를 감안했을 수도 있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는 무조건 반기를 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일 수도 있다.

혹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계산처럼 한반도의 긴장도 해소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것이 중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꼼수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은 현재 북한의 ICBM 시험발사에 대해서도 강 건너 불구경 분위기라는 점이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발표한 전문가패널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연료·석탄 밀수부터 조업권 거래까지 수법도 다양했다. 그러면서도 패널의 조사에 협조하지도 않았고, 드러난 증거는 부정했다.

이런 중국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것이라는 일부의 과도한 희망과 기대는 위기 해소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서로 이사할 수 없는 영원한 이웃"이라고 양국관계를 평가했다.

동아시아의 이웃이라는 점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이웃이 강을 건너 불을 꺼주는 데까지 협력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것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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