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를 가다] 마리우폴서 탈출한 가족…"잊고 싶은 공포"

입력 2022-03-23 17:13
수정 2022-03-23 17:21
[우크라를 가다] 마리우폴서 탈출한 가족…"잊고 싶은 공포"

전쟁에 피아니스트 꿈 멈춘 소녀 "오직 평화 원해"



(체르니우치[우크라이나]=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서부 도시 체르니우치의 시청 광장의 벤치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던 피란민 세르히이 씨에게 출발지를 듣는 순간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그는 "마리우폴에서 왔다"고 했다.

'마리우폴'이라는 말 한마디로 그가 지금 겪는 비극이 설명되고도 남았다.

우크라이나 남부의 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은 이번 전쟁에서 최악의 참상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다.

러시아가 장악한 크림반도와 친러 반군의 본거지인 돈바스를 연결하는 요충지인 까닭에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을 반드시 점령하려고 엄청난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20일 넘게 포위된 마리우폴은 이미 이달 초부터 전기·난방·식수 공급이 끊겼고, 주거 건물의 80%가 파괴됐다.

산부인과 병원이 공격당해 산모와 태아가 목숨을 잃는가 하면 어린이와 민간인 수백 명이 대피한 극장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무너지는 참사도 일어났다.

식수가 없어 눈을 녹여 목을 축이던 주민들은 지난 14일에야 도시를 탈출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포위망에 갇혀 있다.

세르히이 씨는 마리우폴에서 겪은 고통을 자세히 떠올리거나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애써 웃어 보인 그는 아이들이 들을까 봐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족이 겪은 일을 전했다.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한 끝에 겨우 도시를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피란길에서도 계속 포성이 들려 가족이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마리우폴을 빠져나온 세르히이 씨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가 떠나온 도시는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여기서는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5년간은 아주 힘든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인구 25만 명의 소도시인 체르니우치에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전쟁을 피해 온 난민 5만3천 명이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서부 체르니우치의 여성·아동 보호시설에서 만난 마리아(13)와 소피아(15)는 수도 키이우의 외곽 도시 브로바리에서 온 피란민이었다.

두 소녀 모두 어머니·형제와 함께 피란길에 올랐고 아버지는 브로바리에 남았다고 한다. 거동이 힘들어 미처 피란하지 못한 할아버지·할머니를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떠나온 브로바리는 현재 키이우를 포위하려는 러시아군과 이를 막으려는 우크라이나군 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지는 곳이다.

마리아는 "첫 폭발음이 들리던 날 집을 떠나 지난 13일 이곳에 도착했다"며 "아빠는 지금도 폭발음이 떨어지는 곳에 있다"고 말했다.

마리아의 꿈은 우크라이나 예술원에 입학해 음악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마리아의 꿈은 '일시 정지' 상태가 됐다.

"저는 피아노 연주를 제일 좋아해요. 예술원에 입학하고 싶었고 계획도 많았어요. 6개월 안에 모든 음악학교 시험을 통과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소피아는 외교관을 꿈꿨다. 하지만 소피아 역시 전쟁으로 미래를 알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저는 배구와 수영을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전혀 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변했고, 저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해요."

둘 다 지금 이 순간 오직 바라는 것은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다시 찾아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날이 와야 멈춰버린 이 소녀들의 꿈도 다시 현재 진행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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