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이주열 "임기 중 코로나19 대응이 가장 기억에 남아"
이창용 후보 지명자에 대해 "여러 면에서 워낙 출중한 분"
노조의 '경영 미흡' 평가에는 "미안한 마음"
"중앙은행 존립 기반은 국민의 신뢰…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유아 기자 = 이달 31일로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은행을 떠나는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 대응과 그 이후의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는 소회를 전했다.
이 총재는 23일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비경제적인 요인들로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에 통화정책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늘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총재로 취임했던 당시 기준금리(2.25%)보다 낮은 수준(1.25%)에서 임기를 마감하는 데 대해서는 "재임하는 동안 경제 상황이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1977년 한은에 입행해 조사국장과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 부총재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총재로 임명됐고,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했다.
43년을 한은에 몸담아 '최장수 한은 근무' 타이틀을 가진 우리나라 최고의 통화정책 전문가로 꼽히며, 총재로서 이끌었던 금통위는 지난 8년간 기준금리를 9차례 인하하고 5차례 인상했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문답 내용.
-- 총재로 재임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 총재로서 주재한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 방향 결정 회의가 76번이었는데, 어느 하나 쉬웠거나 중요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국내외 환경뿐만 아니라 비경제적 요인들까지 겹치면서 불확실성이 컸던 터라, 그 속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때를 꼽자면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의 위기 대응, 그리고 그 이후 통화정책 정상화에 시동 거는 그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구도 상상 못 한 감염병 위기가 찾아오면서 내부적으로 금통위원들과는 물론이고 바깥으로는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등 관계 기관장들과 긴박하게 협의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 고심의 산물로 전례 없는 정책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이런 지난 2년간의 모든 통화정책 결정 회의가 기억난다.
또 2년 전 이맘때 미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것도 당시 금융시장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것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겠다고 생각한다.
-- 그간 펴왔던 통화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 어떤 직책이든 재임 실적을 평가하면 다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저 자신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을 좀 더 갖고 판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정이 한국 경제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지 늘 고민하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한다.
총재를 지내는 동안 기준금리 인상보다 인하 횟수가 더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 통화정책의 기본은 경기 흐름과 물가, 금융 불균형 상황에 따라 정하는 것이라 저 자신을 매파냐, 비둘기파냐 이렇게 구분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인하 횟수가 더 많았고 기준금리 수준이 취임 당시보다 낮다는 것은 재임하는 동안 경기 상황이 어려웠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 정부가 신임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는데.
▲ 나도 소식을 접했다. 지명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학식, 정책 운용 경험이나 국제 네트워크 등 여러 면에서 워낙 출중한 분이라 생각한다.
다음 금통위 회의(4월 14일)가 지금으로부터 20여 일 남았는데, 내가 두 번의 청문회를 거쳤던 때를 생각하면 그전까지는 취임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혹시나 공백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금통위는 합의제 의결 기관이기 때문에 통화정책 차질이나 실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기우라고 생각한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더 과격한 긴축 정책을 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새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와 대출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미국 통화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워낙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도 미리 점검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금융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준의 움직임을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정부의 재정 정책과 한은의 통화정책이 엇박자라는 말도 그간 있었다. 통화정책은 거시건전성에 맞춰 조정하는 것이고 재정 정책은 취약한 부분에 대한 선별적 지원 차원에서 운영해왔다. 새 정부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지만, 소외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 확대를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 이런 정책적 흐름은 당분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 지난번 금통위 회의 이후 물가상승 압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수 있나.
▲ 지난달 발표할 적에는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1%로 냈다. 당시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제했다. 그런데 직후 충돌이 발생하고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충돌이 발생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현재 양국의 상황이 국내 물가에 상승 압력을 넣고, 성장에도 상당한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은 사실이다.
-- 지난해 말 한은 노조는 이 총재의 경영 실적이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로 타 기관에 비해 낮은 임금 인상률과 편파적인 인사 등을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실제로 한은 직원의 급여 수준이 비교 가능한 여타 기관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를 개선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는데, 재임 기간에 이를 개선하지 못한 게 아쉽고 직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 총재를 지내는 동안 마음에 새기고 다진 생각이 있다면, 중앙은행의 존립 기반은 국민의 신뢰라는 것이다. 신뢰라는 건 말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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