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한달] 유가·밀값 40%대 급등…'에너지·식량위기 공포'
세계 공급망 혼란도 가중…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확산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김윤구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째 이어지면서 원유·천연가스·밀 등 세계 에너지·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악화하고 있다.
급기야 1970년대 '오일 쇼크'와 같은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이 밀어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갈수록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상황이다.
◇ 천정부지 유가, 배럴당 240달러 전망도…밀·옥수수도 급등
전쟁으로 에너지·식품 가격이 급등해 가뜩이나 수십 년 만에 최고로 오른 각국의 소비자물가가 더욱 치솟고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연초 대비 40% 이상 뛰어올랐다. 러시아는 세계 원유·정유제품 수출량의 약 7%를 차지한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배럴당 90달러대였던 국제유가는 2주도 안 돼 배럴당 130달러선을 돌파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에 대한 기대감과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둔화 우려로 지난주에는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공급 감소 전망과 유럽연합(EU)도 러시아 에너지 제재 동참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에 유가는 이번 주 다시 상승세를 타고 110달러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2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연초 이후 이날까지 약 45%, 브렌트유는 약 48% 각각 뛰어올랐다.
골드만삭스, 바클리스 등의 애널리스트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에너지 정보업체 라이스타드에너지는 올여름 240달러 도달 가능성도 언급했다.
천연가스도 사정이 심각하다. 러시아는 2020년 기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며, 특히 EU는 천연가스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시장의 천연가스 가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이달 초 역대 최고가인 ㎿h(메가와트시)당 345유로까지 치솟았다.
이후 상승세가 다소 진정됐지만, 이날 현재 98유로대로 연초 대비 약 40% 급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지표인 일본·한국 가격지표(JKM)도 연초보다 12% 상승했다.
니켈과 알루미늄 가격도 한때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금속 가격도 일제히 급등했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 수요가 급증하는 니켈은 연초 대비 70% 넘게 올랐으며, 알루미늄은 20%가량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혼란으로 수십 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한 세계 식품 가격을 더 높이 끌어올리며 빈곤국의 식량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밀 선물 가격은 이달 초 부셸(약 27.2㎏)당 12.94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현재는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11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연초보다 45%가량 오른 수준이다.
밀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세계 수출량의 약 29%를 차지하는 작물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며,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시장의 약 14%를 점유하는 옥수수 가격도 연초보다 약 27% 상승했으며, 대두도 올해 들어 약 28% 올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이미 지난 2월 140.7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전쟁의 영향이 본격화한 3월 이후 수치는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 전 세계 공급망 비상…바다·육상·하늘길 모두 정체
코로나19 이후 본격화한 세계적인 공급망 혼란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서방 세계의 제재로 한층 악화하고 있다.
우선 발트해 러시아 항구 등 관련 지역을 오가던 컨테이너선들이 인근 항구로 정박지를 바꾸면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독일 등의 항구에서 물동량이 늘고 있다.
유럽 세관당국이 러시아행 화물을 꼼꼼하게 검사함에 따라 지역 내 허브항에서 화물들이 적체되고 있다.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도 해상 운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물선용 벙커C유 가격은 이달 초 1천달러를 돌파해 코로나19 대확산 이전의 두 배 수준에 달했다.
중국과 유럽을 오가는 화물을 나르는 대륙횡단 철도 수송도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인 물류대란으로 아시아와 서방 세계 간 해상운송이 지연되고 그 비용도 급증하자 러시아를 통과하는 철도 수송이 부상했었다. 하지만 이번 제재로 영향을 받게 된 철도 수송물량은 연간 기준으로 컨테이너 150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철도 수송을 대신할 대안도 마땅치 않다. 컨테이너선 운임은 이미 할증된 상태이고, 서방 세계의 제재로 러시아 측은 하늘길도 막힌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 영공은 유럽과 환태평양을 이어주는 최단 항로이지만, 이를 우회할 수밖에 없게 됐다.
덴마크 물류회사 DSV에 따르면 러시아 영공 폐쇄로 중국과 유럽 간 항공화물운송 시간이 6시간 늘어나고 중간에 기착해 재급유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유럽의 자동차 업계는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와이어 하니스'(배선 뭉치)를 구하지 못해 생산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와이어 하니스는 일반 자동차에서 최대 5km에 달하는 전선을 깔끔하게 묶어 정리해주는 부품 세트다. 우크라이나산 와이어 하니스가 2020년 유럽연합(EU)의 전체 와이어 하니스 수입량의 7%가량을 차지했다.
자동차 업계는 또한 네온가스, 팔라듐, 니켈 등 원료 물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pseudoj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