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푸틴이 우크라를 '네오나치'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입력 2022-03-19 11:46
[우크라 침공] 푸틴이 우크라를 '네오나치'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AP "우크라 침공 정당화하기 위한 허위정보이자 이기적인 술책"

정작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은 유대계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개전 초기부터 분쟁지역 내 러시아인에 대한 박해를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정부를 '네오나치'(Neo-Nazis)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가 주장하는 이런 네오나치 정부의 수장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대계다.



18일(현지시간) AP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 침공을 네오나치와의 싸움으로 포장하는 것은 그의 목표 달성을 위한 허위정보이자 이기적 술책이라고 역사학자와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솀'(Yad Vashem) 관계자 등을 인용해 보도했다.

옛 소련 국민 2천700만명이 숨진 2차 세계대전은 러시아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당시 역사적 사실 일부는 푸틴이 홀로코스트와 나치즘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푸틴의 이런 시도는 러시아가 2차대전의 특정 사실을 재구성하면서 나치 독일에 투쟁한 역사를 강조해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러시아가 그동안 2차대전 당시 일부 소련 국민이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협력한 사실은 축소하고 나치를 물리치는 데 소련이 한 역할은 부각하려 힘써왔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2차대전 때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가 독일에 점령된 뒤 일부 국민이 나치에 협력해 유대인 학살을 도운 사실을 2014년 친러시아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현 우크라이나 정부와 연결하려 하고 있다.

야드 바솀에 따르면 2차대전 때 동유럽의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일부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나치 점령군을 환영한 것은 사실이다.

또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일부 정치인은 2차대전 당시 일부 국민이 나치에 협력한 사실은 외면한 채 소련 통치에 저항한 사실만 강조하며 민족주의자들을 미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를 토대로 우크라이나 현 정부를 나치로 모는 것은 유대계 대통령이 민주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선출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며 친서방 성향을 보여온 우크라이나의 정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대계로, 할아버지의 4형제 가운데 3명이 나치 독일 점령군에게 살해됐다고 밝힌 바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조너선 데켈-첸 교수는 "영토 확대 야망과 국가적 테러 지원, 반유대주의 만연, 편협한 신앙, 독재 등 나치즘 구성 요소 가운데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러시아의 주장은 완전 허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홀로코스트로 600만명을 잃은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국가 정체성에서 여전히 핵심이 되고 있다. 홀로코스트 추모일에는 국가 전체가 2분간 멈춰 묵념하고, 학생과 군인 등은 야드 바솀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홀로코스트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도 다른 나라와 갈등을 마다하지 않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유난히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은 러시아 침공을 거듭 비난했지만 나프탈리 베넷 총리는 아직 러시아를 공개 비난하지 않고 중립적 태도를 보인다. 베넷 총리는 최근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이웃 국가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막강한 영향력과 그에 따른 안보 이익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중동의 적들에게 넘어갈 무기의 보관소로 보고 있으며 이런 곳을 공격하려면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분석가 라비브 드러커는 일간 하레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부의 침묵에 대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 관리인 베라 미슐린-샤피르는 "러시아에 대해 말로 도전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안보 우려가 더 큰 관심사"라며 "러시아는 우리 적들에게 무기를 공급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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