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2014년부터 있었던 올리가르히 제재, 이번엔 성공할까

입력 2022-03-17 17:55
[우크라 침공] 2014년부터 있었던 올리가르히 제재, 이번엔 성공할까

각국 정부·의회, 시간·비용 탓 적극 대처 안해…"영국 태도 변화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우리는 이제 당신이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이익을 거둬들일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제재 대상으로 지목한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에 날 선 경고를 날렸다.

올리가르히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부와 권력을 얻은 신흥 재벌·관료를 지칭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오랜 동지이거나 호혜적 관계를 쌓은 경우가 많아,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고자 서방이 이들의 자산을 겨냥한 제재를 가했다.

푸틴 대통령이 쿠데타 등으로 추출된다면 그 일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당시 이미 제재 대상에 올랐다.

8년이 지나서 이들에게 '재정적 사형선고'를 내리겠다면서 제재를 다시 가한 것은 기존 제재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올리가르히 중 한 명이자 푸틴 대통령의 유도 연습 상대로 유명한 건설 재벌 아르카디 로텐베르그의 사례를 통해 그간 허점투성이로 운영된 제재 실태를 조명했다.

서방 국가들이 겉으로는 제재 방침을 천명했지만, 속으로는 주요 행정 조직과 의회가 이를 위한 실제 조치를 부실하게 집행하고 지원했다는 지적이 골자다.

NYT가 글로벌 기업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로텐베르그에 연루된 기업만 10여개 국 2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인 재산은 약 30억달러(약 3조6천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를 조사했던 서방 당국자들은 로텐베르그가 제재에도 부를 유지하고 오히려 키운 방법은 올리가르히들이 쓰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뛰어난 회계사와 법률 전문가를 동원해 조세회피처 등에 유령회사들을 세우고 금전 거래를 마구 섞는 식으로 자신들의 자산을 해외 곳곳에 숨겼다.

로텐베르그의 경우 중남미 소국 벨리즈에 유령회사를 세우고 이를 지중해 키프로스에 사는 주주들과 함께 영국에서 운영하면서 은행 계좌는 에스토니아에 개설하는 식이었다.

전문 변호사를 고용해 감독이 느슨한 역외 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우면서 실소유주는 따로 둔다. 이후 이 회사가 또 다른 유령회사들을 소유하게 해 복잡한 지배구조를 짜내 실소유주가 누군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NYT는 2017년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 보고서와 미 상원 보고서를 토대로 로텐베르그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마크 오멜니츠키라는 영국인 전문가를 내세워 이런 복잡한 망을 구성케 한 것으로 분석했다.



올리가르히를 추적해야 할 공직자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도 한몫했다고 NYT는 강조했다.

미국이나 영국 당국자들이 올리가르히들이 정성껏 만들어놓은 복잡한 제재 회피 구조를 해체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소요되는 것을 꺼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이런 사례로 추정되는 의심스러운 금융 거래를 발견하고 신고까지 했지만, 정부 대응은 굼뜨기만 했다고 한다.

미 상원 의원실 소속 한 보좌관은 "로텐베르그를 조사했던 수사관들이 그간 여러 은행이 재무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런 사례를 상당수 찾아냈지만, 유의미한 진척은 없었다"고 전했다.

NYT는 이는 결국 금융·기업 관련 불투명성을 걷어내야 할 문제지만, 서방 정부들은 이를 위한 조치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유럽연합(EU)은 권역 소속 기업이면 지배구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규제를 도입했지만, 아직도 17개 국가에서 이런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미국 역시 지난해 자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당국에 실소유주를 밝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아직 이를 위한 예산 6억3천만달러(약 7천600억원)를 집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고 미국·서방 당국자들은 말한다.

NYT는 올리가르히들이 자국 권역을 자산 도피처로 활용해도 이를 엄격히 단속하지 않았던 영국이 이번에 앞장서 제재 대열을 이끄는 점을 한 근거로 들었다. 영국은 러시아 재벌들이 매우 좋아하는 재산 은닉처 중 한 곳으로 지목돼 왔다.

지난 4일 영국은 내무부, 재무부, 산업부, 주택부, 국가범죄수사국 등으로 구성된 '올리가르히 TF'까지 꾸리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여기에 호주, 일본, 캐나다도 동참해 제재 참여자도 많아졌다.

국제 분쟁마다 엄격히 중립을 표방해왔던 스위스마저 EU의 대(對)러 경제 제재에 동참한다며 자국 은행 계좌에서 제재 대상에 오른 러시아인의 자산을 동결했다.

NYT는 올리가르히 제재를 위해 일부 국가는 자국의 법까지 개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제재 명단에 오른 인물의 자산을 단순히 동결하는 것이 아닌 압수하는 법안을 도입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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