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의 루게릭병, '악화냐 호전이냐' 면역세포 유형이 결정
면역세포 '표적 치료', 병세 '예측 진단법' 개발 기대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진, 저널 '이라이프'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보통 루게릭병으로 알고 있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은 수의근(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을 조절하는 신경세포가 소멸해 생기는 신경 퇴행 질환이다.
환자의 약 10%가 유전적 특징을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발병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왜 병이 생기는지 모르니 효과적인 치료법도 아직 개발된 게 없다.
이 병에 걸리면 손과 다리 등의 근육이 약해져 기본 동작은 물론 말하기, 음식 삼키기 등이 어려워지고 나중엔 호흡 장애가 오기도 한다.
ALS의 발생과 진행에 면역계가 연관돼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ALS 환자에겐 신경교세포의 활성화, T세포의 부적절한 중추신경계 발현 등에 따른 신경염증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말초신경의 면역 활성화가 말초·중추 신경계 간의 면역 신호 교환을 거쳐 ALS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보고도 있었다.
그런데 면역세포의 유형별 증감에 따라 ALS 병세가 크게 달라진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ALS의 진행을 늦추는 면역세포와 부추기는 면역세포가 따로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 발견은 우선 ALS 병세를 관찰하고 예측하는 진단 지표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특정 면역세포 유형을 겨냥하는 표적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가 될 거로 과학자들은 기대한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5일(현지 시각) 저널 '이라이프(eLife)'에 논문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처음부터 ALS의 병세 진단에 면역세포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 목표를 뒀다.
수도 스톡홀름에 거주하는 288명의 ALS 환자를 실험군으로 모집해 2015∼2020년 5년간 추적했다.
일정한 주기로 혈액 샘플을 채취해 유형별 면역세포 증감과 병세의 진행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분석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참여한 환자들의 병세는 나빠져 음식 삼키기, 손으로 물건 잡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의 기본 동작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 혈액 샘플에서 분리되는 림프구, 호중구, 단핵구 등 면역세포 수도 계속 늘어났다.
연구팀은 92명의 ALS 환자로 구성된 '플로우 C 코호트'의 혈액 샘플에서 23개 하위 림프구 그룹의 개체 수를 측정했다.
이 하위 코호트의 88%는 주 코호트의 288명에 포함된 피험자였다.
23개 하위 그룹의 유형별 림프구 수와 병세 변화를 연관 분석한 결과, 자연살해세포(NK세포)가 많을수록, 그리고 특정 유형의 T세포(Th2 분화 CD4+ T세포) 점유율이 높을수록 환자의 생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CD8+ T세포와 CD4+ EMRA T세포의 점유율 상승은 생존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과 연관돼 있었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이 대학 환경의학 연구소의 칸 쿠이 박사는 "ALS에서 면역세포는 이중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라면서 "호중구와 단핵구의 증가는 운동 기능의 악화를 반영하지만, T세포 수치의 변화는 생존 자체와 더 명확히 연관돼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ALS는 치명률이 상당히 높은 병이다. 면역세포 측정에 응한 환자가 도중에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연구 결과를 신중히 해석해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발견이 특정 유형의 면역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효과적인 ALS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가 크다.
아울러 ALS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더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환자 모니터 기법을 개발하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의 카롤리네 잉레 박사는 "특정 유형의 면역세포를 표적으로 삼는 치료가 실제로 ALS 환자의 병세 개선에 도움이 될지는 후속 연구를 통해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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