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인도의 딜레마…몸은 '쿼드 멤버' 마음은 러시아?
유엔 결의 기권 이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검토까지
무기 수입으로 끈끈…'중국 견제' 다급한 미 일각선 이해 목소리도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강력한 경제 제재 조처를 도입한 가운데 세계 5위권 경제 대국인 인도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명색이 미국 주도의 4개국 안보 협의체 쿼드의 회원국임에도 물밑에서는 궁지에 몰린 러시아의 '구원 투수'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가 이처럼 애매한 태도를 계속 보일 경우 미국이 의욕을 보이는 대러시아 제재망에 상당한 '구멍'이 생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1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과 인도 언론에 따르면 하르디프 싱 푸리 인도 석유·천연가스부 장관은 전날 의회에서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리 장관은 "현재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수입 가능 원유량, 보험, 결제 방식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기로 한 상태로 세부 조건을 조율 중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이후 인도 정부 고위 관리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 추진 상황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세계 2위의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현재 미국 등의 제재로 인해 사실상 판로가 막힌 상태다.
인도는 러시아의 달러화 결제가 막힌 상황을 고려해 양국 화폐인 루피화와 루블화로 거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3위의 원유 수입국인 인도는 수요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그동안 러시아산 비중은 이 가운데 2∼3%에 불과했다.
이번 논의가 성사되면 인도로서는 세계 유가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저가로 러시아산 원유를 살 수 있고, 자금줄이 막힌 러시아는 인도에 원유를 팔아 숨통을 틔울 수 있게 된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인 셈이다.
인도는 원유 외에 다른 러시아산 원자재도 할인 가격으로 구매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앞서 인도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지기도 했다.
여러 서방 국가와 달리 아직 러시아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 "폭력과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외교의 길로 복귀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인도의 이런 뜨뜻미지근한 태도는 미국의 러시아 고립 전략에 상당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가 러시아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군사 관계 등을 토대로 수십 년간 이어온 '밀월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러시아는 2016∼2020년 인도 무기 수입의 49%를 차지하는 등 인도 국방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러 관계가 악화할 경우 러시아산 무기로 중국과 파키스탄을 견제해야 하는 인도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과거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는 중립 외교를 펼치는 중에서도 미국보다는 러시아(구 소련)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도는 2008년까지 미국산 무기를 거의 수입하지 않다가 이후 늘리기 시작했으며 2019년에는 150억달러로 확대됐다.
인도군 중장 출신인 D.S. 후다는 최근 AP통신에 "러시아는 인도에 핵잠수함을 임대한 유일한 나라"라며 "다른 어떤 나라가 핵잠수함을 인도에 빌려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인도군 무기 체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동 중인 유일한 항공모함 INS 비크라마디티아도 러시아로부터 인계받아 현대화한 뒤 2013년에 취역한 것이다.
공군이 운용 중인 러시아산 전투기도 410대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 외교관 출신인 지텐드라 나트 미스라 인도 진달국제관계대 선임연구원은 "사실 미국은 인도에 (첨단 군사) 기술을 제공하려는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고 그간 인도를 홀대했던 미국의 태도를 지적했다.
다만, 인도도 러시아에 대한 무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전문가들은 현재 인도 무기의 60%가 러시아산인 것으로 추정하는데 1990년대 초에는 육군의 70%, 공군의 80%, 해군의 85%가 러시아산 무기였다고 지적한다.
인도는 2011년 이후 러시아산 무기 수입을 53%가량 줄여왔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이에 미국 일각에서는 이런 인도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라이 라트너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안보차관보는 최근 미 의회에서 "인도는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무기의 대부분을 러시아로부터 사들였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다만, 희소식은 인도가 지난 몇 년간 무기 수입을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은 인도와 함께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라 인도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인도는 미국의 압박 속에 러시아로부터 첨단 방공미사일 S-400을 도입하고 있지만, 미국은 인도에 이와 관련한 제재는 내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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