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가 온다"…공포에 슈퍼 달려간 중국인들

입력 2022-03-14 17:10
수정 2022-03-14 17:30
[르포] "코로나가 온다"…공포에 슈퍼 달려간 중국인들

1천700만 선전 전면봉쇄에 충격…"멀게만 느껴지던 위험이 바로 내 옆까지"

'제로 코로나' 한계 닥쳤단 불안감 고조



(상하이·베이징=연합뉴스) 차대운 김진방 특파원 = 13일 중국 상하이의 대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 채소 판매대는 텅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상추 몇 조각마저 없었다면 여기가 채소를 놓고 팔던 곳이라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인구 1천700만의 거대 도시인 선전시가 코로나19 탓에 봉쇄됐다는 소식이 떨어진 13일 저녁, 이곳의 채소, 고기 등 식품 코너 곳곳에서 물건이 동이 났다.

회계 분야에 종사하는 리(李)씨도 혹시 모를 봉쇄에 대비해 식품을 사놓기 위해 부인, 아들과 함께 캠핑 때 물건을 나르는 손수레까지 끌고 이곳을 찾았다.

그는 "코로나19가 막 퍼지던 2020년에도 없던 일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 돼 고기 같은 식자재를 많이 사 놓았다"고 말했다.

지난 2년여간 세계가 코로나19로 초래된 대혼란에 휩싸인 가운데서도 코로나 감염자 수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채 살아온 중국 사회에서 갑작스러운 코로나19 동시다발적 확산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과 함께 앞서 76일과 24일간 도시를 전면 봉쇄했던 우한과 시안에서 드러났던 혼돈과 불편 등이 뒤섞인 반응이다.

여기에 '코로나 만리장성'으로 불린 제로 코로나 방역이 무력화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등의 불안도 꼬리를 물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초반 상주인구 1천400만명의 대도시인 우한을 76일간 전면 봉쇄하는 초강경 대응 조치로 '제로 코로나'를 실현했다.

이후 '우한 모델'을 복제해가면서 산발적 코로나19 발생을 틀어막는 전략을 택해왔다. 단기적으로 커다란 사회·경제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최대한 빨리 사회 경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적은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는 셈법이었다.

하지만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는 '코로나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상하이시 보건 당국은 코로나19 광범위한 지역 확산이 코로나19 격리 시설 근무자들에게서 시작됐다고 결론 내렸는데 이는 인위적 장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감염자가 대거 나오면서 기존 방식의 추적 대응으로는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경제·사회적 충격을 감수하고 선전시, 창춘시 등 대도시들을 전면 봉쇄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유연하게 코로나19를 막아왔다는 '방역 모범' 도시인 상하이에서도 코로나19가 빠르게 번지면서 불안감이 일상화되고 있다.

상하이 보건 당국은 13일 하루 169명의 코로나19 감염자(무증상 감염 128명)가 발견됐다고 14일 오전 발표했다.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이날부터 상하이의 초중고교와 유치원이 모두 휴업하거나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가운데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나온 주거지들이 곳곳에서 봉쇄되고 있다.

아직 선전이나 창춘 등지처럼 전면 봉쇄령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상하이에서 타지역으로 나가려면 48시간 이내에 받은 코로나19 확진 검사 음성 증명서를 내야 한다.

157개 공원은 폐쇄됐고, 시외버스 운행은 모두 중단됐다. 기차는 정상 운행하지만 상하이에서 다른 도시를 오가는 항공편은 절반으로 감축됐다. 모두 상하이를 드나드는 사람을 억제하기 위한 조처다.

푸단대, 교통대 등 상하이 주요 대학들도 출입이 전면 금지된 채 운영되고 있다. 이런 모든 조치가 상하이 시민들이 우한 사태 이후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다.

투자업계에 종사하는 린(林)씨는 "엊그제 바로 우리 아파트 옆 동에서 밀접접촉자가 나와 해당 동이 봉쇄가 됐다"며 "멀게만 느끼던 코로나19 위험이 바로 내 옆에까지 다가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중국 내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도 걱정이 커지고 있다.

베이징 한국인 밀집 지역인 왕징(望京)에서 14일 코로나19 전수 검사가 시작되자 출근 전 검사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형성됐다.

한동안 안정적이었던 베이징에서도 전수 검사를 한다는 소식에 검사를 받기 위해 나온 교민들은 착잡한 표정이었다.

교민 김모(45) 씨는 "며칠 전부터 중국에도 코로나19가 확산한다는 소식에 불안했다"며 "어젯밤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메시지를 받고 불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손성국(58) 창춘 한글학교 교장은 "200여명의 교민이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며 "봉쇄에 대비해 생필품을 미리 장만해놨기 때문에 아직 큰 동요는 없지만 언제 이 상황이 종식될지 몰라 답답해한다"고 전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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