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거실 추워도 돼" 독일에 러 석유가스 제재여론 확산

입력 2022-03-10 16:23
수정 2022-03-10 16:28
[우크라 침공] "거실 추워도 돼" 독일에 러 석유가스 제재여론 확산

독 정부 진퇴양난…시민생활 지장 vs 푸틴 전쟁비용 헌납

천연가스 절반 의존…'끊어도 타격 견딜만하다' 연구결과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에너지 분야도 제재하라는 내부 압력에 직면했다.

최근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의 주력 산업인 에너지 부문을 제재하기 시작하자 독일 내부서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AFP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8일 미국은 러시아 원유, 가스, 석탄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영국도 자국 수요의 8%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러시아 수출에서 원유·가스 등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해당 제재는 외화 조달에 을 가할 조처로 꼽혀 왔다.

보도에 따르면 9일 독일 환경운동가, 과학자, 작가 등 100명이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우리가 (러시아의) 전쟁 비용을 대고 있다"면서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보수 인사로 분류되는 노르베르트 뢰트겐 독일 기독민주당(CDU) 의원도 지난 6일 신문 기고문에서 "(독일에서) 10억유로(약 1조 3천585억원)가 매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들어간다. 러시아 중앙은행을 겨냥한 제재가 무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독일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겨냥해 금융·첨단 기술 등 분야서 유럽연합(EU) 제재안에 동참했지만, 에너지 분야만큼은 줄곧 제재에 반대해왔다.

독일은 유럽에서 특히 러시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여서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절반, 석유의 3분의 1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7일 성명에서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자국 시민의 일상 활동에 필수 요소라며, 이런 제재를 당장 내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도 8일 "며칠간 전기가 끊겨 간호사·교사 등이 일하러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측면으로는 이기는 꼴이 된다"면서 "그가 (독일을 포함해) 여러 국가를 혼란에 빠지게 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우려와 달리 러시아산 에너지 전면 수입 중단이 독일에 타격을 줄지언정 완전히 불가능한 조치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독일국립과학아카데미 레오폴디나는 최근 출간한 연구에서 이런 조치가 '감당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놨다.

연구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석탄은 다른 공급지산으로 대체할 수 있는 한편 가스의 경우 일정 부분 국가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진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끊은 후 대체 공급지를 찾지 못할 경우 가계·기업으로 공급량이 약 30%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독일 내 총 에너지 소비량은 8% 떨어진다.

국내총생산(GDP)은 최악의 경우 3%, 최선엔 0.2% 감소한다. 이렇게 되면 개별 국민은 매년 80∼1천유로(약 11∼136만원)를 에너지 분야 지출로 더 써야 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난방 등 요인으로 에너지 수요가 커지는 겨울에도, 국가 경제가 무너지지 않고 이런 조치를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럴 경우 에너지·물가 상승 여파를 줄이고 재생 에너지로 전환을 장려하는 등 정부의 후속 조치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대러 제재를 위해서라면 이런 경제적 여파쯤은 견딜 수 있다는 여론도 있다.

독일 일간지 쥐드도이체 자이퉁은 독일과 같은 부국은 러시아 에너지와 결별하더라도 견딜 수 있고, 또 견뎌야 한다고 주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보좌관이었던 크리스토프 호이스겐은 독일 ARD방송에 "독일 국민은 거실이 조금 추워지는 일은 신경쓰지 않고 우크라이나 국민에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금주 발표된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독일 국민 54%가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 중단 조치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독일이 대러 제재를 위해 올해 연말까지로 예정돼 있던 탈원전 정책을 늦출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년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온 독일은 현재 남은 원전 3곳을 올해 말까지 모두 폐쇄할 예정이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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