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능 다 하는 랑게르한스섬, 이제 줄기세포로 만들 수 있다
베타세포 인슐린 분비·포도당 대사 조절, 정상 조직과 맞먹어
핀란드 헬싱키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 생명공학'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혈당 조절에 관여하는 인슐린은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1형 당뇨병은 베타 세포가 파괴돼 생기는 대사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하루에도 여러 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런 환자에겐 뇌사 기증자의 췌장 조직을 이식하는 게 인슐린 분비를 복원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췌장 이식은 많은 환자에게 하기 어렵다.
예컨대 한 명의 환자를 고치려면 기증자 두 명분의 베타 세포가 필요하다.
제 기능을 두루 갖춘 췌장 조직을 줄기세포에서 분화하는 연구가 오래전부터 주목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계에선 이렇게 배양한 '랑게르한스섬'을 줄여서 '줄기세포 유래 섬'(SC-islet)이라고 한다.
보통 성인의 췌장엔 약 300만 개의 랑게르한스섬이 있다.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 글루카곤을 만드는 알파세포 등이 섬 모양으로 모여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많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시험적으로 배양된 SC-islet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정상적인 랑게르한스섬과 비교해 발달이 미숙했고 인슐린 분비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
마침내 핀란드 헬싱키대 과학자들이 1형 당뇨병의 세포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사상 최초로 인슐린을 제대로 분비하고 글루코스(포도당) 대사도 잘 조절하는, 충분히 성숙한 SC-islet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헬싱키대 '줄기세포 물질대사 연구 프로그램'의 티모 오통코스키 의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3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생명공학'(Nature Biotechnology)에 논문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SC-islet의 베타세포 기능을 배양한 인간 세포와 생쥐 모델에 시험했다.
SC-islet의 베타세포는 정상 세포처럼 인슐린 분비를 제어했다.
특히 생쥐 모델에 이식한 SC-islet 베타세포는 글루코스 수치의 변화에 건강한 기증자의 랑게르한스섬보다 더 매끄럽게 반응했다.
원래 생쥐의 혈중 글루코스 수치는 인간보다 8∼10mmol(밀리몰·농도 단위) 높다.
그런데 SC-islet 베타세포를 이식하자 생쥐의 혈당치가 4∼5mmol 떨어져 인간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게다가 생쥐의 혈당치는 낮아진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는 이식한 베타세포가 혈당 조절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SC-islet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세밀히 관찰했다.
여기에서 글루코스 자극을 받아 SC-islet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발달하는 걸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SC-islet의 세포 구성이 개편돼 베타세포가 증가한다는 걸 알아냈다.
당 분해와 미토콘드리아의 글루코스 대사에선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SC-islet이 글루코스에 반응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덴 문제가 없었다.
연구팀은 이식한 SC-islet이 잘 접목하는지 6개월간 관찰했다. 그런데 SC-islet은 별다른 문제 없이 성숙의 속도를 유지했다.
개별 세포의 유전자 발현 수준을 알 수 있는 단일세포 전이학(Single-cell transcriptomics) 검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특히 성숙 곡선의 정점에선 발달 초기의 랑게르한스섬과 아주 흡사한 전사적 요소가 나타났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오통코스키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앞으로 줄기세포 유래 랑게르한스섬을 더 잘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면서 "그렇게 되면 질병 모델과 세포 치료에 줄기세포 유래 섬을 더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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