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피란민 도우러 달려온 폴란드 시민들
폴란드 시민들 국경서 숙소·음식 온정…옷·장난감 기부도 이어져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 침공 남의 일 아니다"
(프셰미실[폴란드]=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우크라이나 국경과 맞닿은 폴란드의 소도시 프셰미실엔 곳곳에 옷과 식품, 아이들 장난감까지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란민은 누구나 이곳에서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구할 수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 급히 가방 하나만 들고 폴란드로 건너온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겐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자 폴란드 시민의 온정이 빛을 발하고 있다.
곳곳에서 자원봉사자 수천명이 프셰미실과 메디카 국경검문소로 달려왔다.
폴란드 시민 표트르 씨도 그 중 한다.
27일(현지시간) 새벽 4시 자동차로 집을 나서 프셰미실까지 한달음에 왔다고 했다.
"전쟁이라는 재앙이 닥친 우리 이웃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피란민 임시수용소가 된 프셰미실 중앙역 플랫폼에서 우크라이나 말로 '어른 3명과 어린아이 1명 무료 숙소 제공'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피난길에 우크라이나인 36만8천여명이 국경을 넘었다. 폴란드에만 나흘 만에 15만명 정도가 들어온 것으로 추산된다.
국경으로 달려온 폴란드 자원봉사자들은 졸지에 낯선 땅에 오게 된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따뜻한 차와 음식, 담요를 나눠주고 있다. 피란민을 찾아다니며 휴지, 기저귀와 같은 긴요한 생활용품을 챙겨주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프셰미실 중앙역 대합실에는 표토르 씨처럼 무료 숙소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교통편을 제공한다는 푯말을 든 이들이 가득했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마음에 달려 나왔다고 했다.
표트르 씨는 "이번 전쟁은 재앙이고 어떻게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돕고 지원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폴란드에는 이미 우크라이나인이 많은데 나는 그들과 친구고 일도 같이하고 축구도 같이 한다"며 "집에서 아이들과 편히 앉아 놀기보다는 도움을 주려는 행동에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 시민 요안나 씨도 '3명에게 무료 숙소를 제공한다'고 우크라이나어로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피난길에 오른 이들이 주로 여성과 어린아이들인데 숙소가 필요할 거 같아 도움을 주기 위해 나왔어요"
그는 "피란민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자기 나라에 머물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남편, 두 아이와 함께 폴란드 남부에 살고 있다는 그는 "이번 전쟁은 정말 무의미하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전쟁"이라며 "푸틴이 히틀러 꼴이 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폴란드뿐 아니라 독일에서 온 자원봉사자도 만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전날 밤부터 자동차로 달려 이날 오전 프셰미실에 도착한 안드레 씨도 어른 2명과 아이 1명을 위한 무료 운송과 숙소를 제공한다는 푯말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냥 돕고 싶어서 왔다"면서 "피란민의 사진을 봤고 일요일이어서 일을 쉬는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밤을 새워 달려왔다"고 말했다.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사는 그는 "안전한 숙소와 음식, 피란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우크라이나 인들에게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 너무 충격받았고 분노로 가득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어떻게 사람 목숨을 담보로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지 푸틴 추악하다"고 비판했다.
프셰미실 중앙역은 피란민이 우크라이나 여권이나 거주증만 보여주면 유럽연합 내 각 지역으로 무료 교통편을 알선해준다.
중앙역 식료품 창구에서는 피란민이 허기지지 않고 안심할 수 있도록 폴란드 시민들이 기부한 물과 수프, 과일, 빵이 쌓아 놓고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피란민들에겐 음식 그 이상이었을 터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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