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서방, 파병 대신 '슈퍼 경제 제재'로 대응

입력 2022-02-25 11:11
수정 2022-02-25 14:33
[우크라 침공] 서방, 파병 대신 '슈퍼 경제 제재'로 대응

러시아 국책은행 등 달러 거래 차단…반도체·항공우주 첨단 제품 수출제한

가스·원유 수출 막고 SWIFT 퇴출한 대이란 제재보다 약해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러시아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전면 공격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이 참전과 같은 군사 개입 대신 일제히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로 맞대응했다.

서방은 러시아의 은행의 해외 금융거래를 막고 반도체, 항공우주 등 주요 산업 분야의 대러시아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미국은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응해 앞선 제재보다 훨씬 강도 높은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금융 제재는 한층 범위가 넓어져 국책은행인 VTB와 스베르방크, 가스프롬방크 등 90여개 금융기관이 미국 금융 시스템을 통해 거래할 수 없게 됐다.

미국 재무부는 "러시아 금융기관이 수행하는 외환거래의 80%가 미국 달러로 이뤄지는 만큼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우주와 IT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직접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출 통제도 가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과 이들의 가족,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들도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벨라루스 금융 기관과 개인 24개(명)도 제재 대상에 넣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2차 제재에 대해 "지금까지 세계 경제규모 12위 국가인 러시아와 같이 큰 나라에 대해 이런 대규모 제재가 가해진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EU 27개 회원국도 광범위한 금융제재와 기술 수출 통제 등을 골자로 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EU의 제재는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금융 제재뿐만 아니라 에너지, 교통 분야에서도 이뤄지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비자 발급도 제한되고 항공 등 첨단 기술 부품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수출 통제도 가해진다.



영국도 러시아 은행들을 런던 금융시장에서 차단하고 군수·하이테크 무역을 막는 등 강력한 추가 제재방안을 내놓았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24일 "이번 제재는 영국 금융 시스템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게 한다"며 "러시아 무역거래의 절반이 달러화와 파운드화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런던 금융시장에서 러시아 정부와 기업의 자금 조달도 막는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전 사위인 키릴 샤말로프 등 재벌 5명에게도 자산 동결과 입국 금지 제재를 내렸다.

영국 외무부 관계자는 "런던 고급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가장 좋은 호텔에서 묵고 아이들을 최고 사립학교에 보내던 러시아 재벌들의 생활이 모두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나다는 항공, IT 분야의 대러시아 수출을 통제하고 러시아 고위인사 등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일본은 러시아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에 나서면서 반도체 등 일부 물품의 수출 규제에 착수했다.

한국도 대러 독자 제재는 아니지만 대러 수출통제 등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방과 아시아 우방의 추가 제재는 전날 1차 제재보다는 강력하지만 '예전에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제재가 이뤄질 것'이라는 앞선 경고에 부합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이 나온다.

우선 러시아의 주력 수출 분야인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부문이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오히려 미국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등의 수출을 중단하는 등 에너지를 무기화할 경우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서방국의 제재는 금융제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아주 강력한 '한방'이 될 것으로 여겨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은 2차 제재안에서도 발표되지 않았다.

SWIFT는 1만1천개가 넘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안전하게 결제 주문을 주고받는 전산망으로, 이곳에서 퇴출당하면 러시아의 수출이 사실상 대부분 막히게 돼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으로 꼽혔다.

미국과 EU 회원국은 주요 에너지 수출국이자 유럽이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제재하면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한다. SWIFT 퇴출도 러시아만 아니라 서방의 금융기관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서방은 이를 제재 카드에 추가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도 제재 대상에서 일단 빠졌다.

이란에 가해진 서방의 경제·금융 제재와 비교해도 강도가 약하다.

미국은 이란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가스·원유 수출을 제재했으며 SWIFT에서도 퇴출했다. 또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군 핵심 인사도 모조리 제재 명단에 올렸다.

또 현재 서방의 제재는 '1차 제재'(primary sanction)로 제재 주체와의 교역, 금융거래만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란은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자도 제재 대상이 되는 이른바 '세컨더리 제재'(secondary sanction)를 받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제재에서 러시아 경제의 핵심 분야를 겨냥한 내용은 모자랐다"고 평가하면서 러시아 에너지기업 로스네프트 등도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번 침공을 직접 결정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도 아직 가해지지 않았다.



물론 에너지 제재나 SWIFT 퇴출, 푸틴 대통령 제재 등 서방이 아직 도입하지 않은 제재 카드는 추가 제재 방안에 담길 여지가 있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해 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를 SWIFT에서 배제하지 않는 이유로 EU 국가들의 우려를 들면서도 '항상 선택 가능한 옵션'이라며 추후 적용될 여지를 남겨뒀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일치된 노력을 하고 있다"라며 "필요하다면 러시아의 잔악한 행위에 대해 더욱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ba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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