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고강도 조치에도 푸틴 제재는 빠져…남은 카드는 뭔가

입력 2022-02-25 08:46
[우크라 침공] 고강도 조치에도 푸틴 제재는 빠져…남은 카드는 뭔가

'국제결제망 퇴출' 유럽국가 반대…'에너지거래 차단' 시장혼란 우려

푸틴 제재·러 중앙은행 달러시장 접근 금지 등 '마지막 카드' 거론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하루 만에 강력한 제재안을 내놨다.

특히 이번 제재안은 EU(유럽연합) 및 주요 7개국(G7) 동맹과 협의해 도출한 것이다.

제재안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스베르방크와 VTB 등 두 은행을 비롯해 핵심 금융기관 90여 곳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전날 1차 제재보다 상당히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의 항공우주산업 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출 통제가 제재에 포함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측근들까지 제재 대상에 오르면서 러시아가 피부로 느끼게 될 압박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이 그동안 러시아에 대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가혹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흘러나왔던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방안 중 일부는 이번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우선 러시아의 주력 수출 분야인 에너지 부문이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 같은 에너지 기업을 제재해야 더욱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행정부 역시 이를 잘 인지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러시아 에너지 부문을 건드리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한 고위 당국자는 "고유가를 감안할 때 러시아산(産) 석유와 가스를 차단하면 (치솟는) 가격은 푸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제재는 우리가 아닌 러시아 경제를 타격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고 말했다.

주요 석유·가스 수출국인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을 막기 위해 거래를 차단하면 현재의 고유가 글로벌 시장에 기름을 붓는 꼴이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자칫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 정부는 에너지 영역보다 금융제재에 무게중심을 뒀다.

다른 당국자는 "이번 제재의 초점은 금융기관"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금융제재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모았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하는 안도 이번엔 빠졌다.

SWIFT는 1만1천 개가 넘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안전하게 결제 주문을 주고받기 위해 쓰는 전산망이다. 여기서 퇴출되면 러시아는 수출대금을 받지 못하게 돼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 수단 중 하나로 거론돼 왔다.

일례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미국의 대러시아 추가 제재 발표가 예고된 이날 오전 트위터에 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하는 안을 서방에 요구했다.

미국도 이 제재를 검토했지만, EU 국가들의 반대에 부닥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SWIFT에서 퇴출되면 러시아 금융 시스템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는 있지만 동시에 서방 국가의 은행들 역시 러시아에 빌려준 자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없을 수 있다는 점에서 후순위 카드로 남겨둔 것이라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제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럽 국가들이 현시점에선 원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는 항상 선택 가능한 옵션"이라며 "오늘 조치는 그것(SWIFT 퇴출)을 뛰어넘는 엄청난 제재"라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폴리티코, 더힐 등 상당수 미국 언론도 이번 제재에서 러시아의 SWIFT 배제안이 제외된 데 주목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의 핵심주체인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앞서 발표된 제재안도 그렇고, 이번 제재안에서도 푸틴 대통령 측근과 정부내 권력층에 대한 제재방안만 담았다.

기자들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가 빠진 이유를 묻자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 카드는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남겨두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푸틴에 대한 제재를 지금 활용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일각에선 분쟁 종식을 위한 외교를 더 활용하기 위해 여지를 둬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폴리티코는 푸틴 대통령 자산에 대한 제재와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시장 접근 금지 등을 거론하며 "마지막 제재 단계는 (러시아군의) 키예프 점령 때까지 유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핵심 제재들이 빠진 점을 염두에 둔 듯 바이든 대통령은 "한달 쯤 후에 그것(이날 발표한 제재안)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얘기해보자"고 말했다.

결국 에너지 기업 제재와 SWIFT 결제망 퇴출, 푸틴 제재 등 이번에 포함되지 않은 또다른 핵심 제재는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의 추이에 따라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이런 제재들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어 러시아의 목을 조르는 만큼 서방의 고통도 수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동맹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달리프 싱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공격이 더욱 확대될 경우 제재가 더 강화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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