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일촉즉발] 서방, 대러 제재 쏟아냈지만 실효엔 의문

입력 2022-02-23 12:16
수정 2022-02-23 14:01
[우크라 일촉즉발] 서방, 대러 제재 쏟아냈지만 실효엔 의문

군사적 긴장 고조 대비해 '초강력 제재 패키지' 아껴둬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우크라이나 영토에 군을 투입하겠다는 러시아의 발표에 미국·유럽연합(EU)·영국 등 서방 진영이 일제히 경제·금융 제재로 즉각 응수했다.

서방 진영의 제재는 러시아의 금융기관·재벌·하원의원을 집중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당장의 효과는 크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많다.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초강력 제재 패키지'는 앞으로 군사적 긴장 수위가 더 고조될 때를 위해 쟁여둔 것으로 풀이된다.



◇ '침공' 규정한 미국…러 국책은행 자산동결 등 제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자칭 분리주의 공화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이곳에 병력 투입을 명령했다.

미국은 고심 끝에 이를 '침공'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책은행 VEB와 PSB, 이들의 자회사 등 총 42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면 해당 법인과 개인이 미국 내에 보유한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기업이나 개인이 이들과 거래할 수 없다.

일부 국영은행 고위 관계자나, 금융·경제계에 포진한 푸틴 대통령의 측근도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에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대한 신규 투자와 무역·자금조달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DPR·LPR의 독립을 승인한 데 대한 대응조치였다.



◇ 독·러 잇는 가스관사업 중단…영국·EU도 즉각 제재

유럽 주요국도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제재를 즉각 도입했다.

먼저 독일은 자국과 러시아를 직접 연결하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노르트 스트림-2는 러시아에서 발트해 밑을 통과해 독일 해안에 이르는 약 1천230㎞ 길이의 천연가스 수송관이다.

시설 공사는 이미 마무리됐으나 유럽과 러시아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승인이 미뤄지는 상황이어서 이를 불허하는 것은 대러시아 제재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영국은 우크라이나 반군 지역에서 영업하는 은행 5곳뿐 아니라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기업인인 겐나디 팀첸코, 보리스 로텐베르그, 그의 조카인 이고르 로텐베르그 등 개인을 제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영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영국의 개인·기관은 제재 대상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영국에 입국할 수도 없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외무장관도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러시아에 대한 신규 제재를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EU 역시 우크라이나 반군 지역에서 영업하는 은행 등을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DPR, LPR의 독립 승인을 푸틴 대통령에게 요구한 러시아 하원의원 전원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번 제재에 따라 EU 회원국은 DPR, LPR과 무역을 할 수 없다. 러시아의 EU 금융시장 참여도 일부분 제한된다.

일본도 23일 러시아 정부, 정부기관이 발행하거나 보증하는 신규 채권의 일본 내 발행·유통을 금지해 서방의 제재에 동참했다.



◇ '효과 미미' 전망…"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수준에 못미쳐"

서방이 제재를 쏟아내자 표면상으로는 러시아의 금융시장이 일부분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의 대표 주가지수인 MOEX 지수는 22일 미국·유럽의 제재안 발표에 1.5% 하락 마감했다. 전날 10.5%로 큰폭 하락한 데 이어 하락세가 지속됐다.

영국 유명 컨설팅사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이미 널리 회자한 제재로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1% 정도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1차분 제재'만으로는 러시아에 큰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방의 집단적 제재 공세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충격이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CNN은 "사실상 상징적"이라고 평가했다.

제재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우선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 금융기관이 대부분 소규모 은행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형 은행인 스베르방크와 VTB 등은 오히려 이번 제재안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등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 당시에도 서방 국가의 강력한 제재 대상이 된 바 있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제재가 당시의 제재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당시 제재 이후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 대한 저항력을 향상해왔고 러시아 국책은행들은 제재에 대비해 서방 시장에 대한 투자 규모를 축소했다.

아울러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6천350억 달러에 이르는 데다 국가 부채비율은 2021년 기준으로 18%에 그쳐 금고도 탄탄해 외환 위기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 '초강력' 제재는 언제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전면 침공 등을 감행한다면 국제사회가 검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로는 국제금융결제망인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제재가 꼽힌다.

러시아의 금융기관들을 스위프트 망에서 퇴출하는 방안이다.

200여개 국가에서 1만1천 개 금융 기관이 사용하는 '혈관'과 같은 국제 결제망에서 퇴출당하면 러시아의 은행과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러나 서방 국가의 은행 역시 러시아에 빌려준 자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제재 도입이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많다.

미국의 대러 수출 제한 카드도 있다.

미국은 중국 기업 화웨이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을 러시아식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조치는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자국 제품은 물론 제3국에서 이를 이용해 생산한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해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다.

이런 제재가 적용되면 모든 산업의 기초 재료나 다름없는 반도체 거래가 사실상 중단에 준하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강력 제재가 발효되면 러시아와 교역하는 다른 나라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새뮤얼 채럽 연구원은 "이번에 가해진 제재는 그다지 중대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문제는 앞으로의 대처다. 러시아가 추가적인 군사 행동에 나설 확률은 매우 높다. 그런 경우, 매우 파괴적인 제재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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