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기지 해외서 자국으로…코로나가 불붙인 공급망 재편 경쟁

입력 2022-02-23 05:30
생산기지 해외서 자국으로…코로나가 불붙인 공급망 재편 경쟁

물류난까지 겹쳐 해외의존 부담 커져…미국 등 국내 생산 확대

자국 중심 공급망·일자리 창출 노려…경제 블록화 심화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각국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산 전략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해외 생산거점의 공장 가동이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망에 구멍이 뚫리고 여기에 물류난까지 겹쳐 비용 부담이 오히려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로 옮긴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다시 이전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이나 자국에서 가까운 나라로 옮기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움직임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자립을 둘러싼 G2(미국·중국)의 경쟁에서 보듯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전략은 노동 비용 증가와 교역의 지역화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해외 생산 줄이고 자국 비중 늘리는 기업들

영국 가구 소매업체 ScS는 지난해 국내 생산 비중을 50%에서 60% 이상으로 늘렸다.

스티브 카슨 ScS 최고경영자(CEO)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공급망 문제와 비용, (해외공장의) 늘어난 제품 생산 시간 때문에 영국 내 생산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 가구업체들은 값싼 소파와 정원용 테이블 등 제품 생산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반도체와 비교해 부피가 크고 무거운 가구의 컨테이너 운송비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1천200% 뛰었다. 이들 업체가 중국 현지 생산시설 일부를 자국이나 인접국으로 옮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폴란드와 그 인접 국가에서 자사 제품의 20%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조립가구 업체 스웨덴 이케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갈등 고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9월 베트남 협력사의 스마트폰 생산라인 일부를 경북 구미로 옮겼다. 베트남은 삼성전자 휴대폰의 최대 생산거점이다.

삼성 측은 구미공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협력사 생산라인이 노후해 보강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베트남의 코로나19 확산 여파도 고려한 것으로 해석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해외에 진출했다가 지난해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26개(중소기업 17개, 중견기업 9개)로 2020년보다 2개 늘어나며 역대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은 국내 복귀 이유로 인건비 등 해외 생산원가 상승과 현지 매출 감소를 주로 들었다.

미국은 국제 공급망의 와해로 반도체와 자동차부품 수급 등이 차질을 빚으며 주요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자 자국 내 생산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최근 내놓은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미국산 물품 구매 의무 강화, 미 공급망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행정명령을 하고 세제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이런 본국 회귀 전략의 일환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20억 달러(약 62조1천억원) 규모의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며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미 반도체 회사 인텔은 지난달 미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약 23조9천억원)를 들여 첨단 반도체 생산·개발 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미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향후 10년간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반도체 연구·생산시설 건설에 1천500억 달러(약 17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지난해 10월 밝혔다.

유럽연합(EU)은 유럽 내 반도체 공급을 확대하고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수십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경쟁력 확보 구상을 이달 초 공개했다.



◇ 국내 일자리 창출 기대…"인건비 상승·교역 둔화 우려"

이같은 자국 내 또는 역내 생산 확대는 일자리 창출, 대외 의존도 완화에 따른 상품수지 적자 개선 등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미국의 경우 버락 오바마 행정부부터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 제조업 일자리가 증가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국적 회계컨설팅업체 PwC는 향후 10년간 제약, 컴퓨터, 전기장비 부문에서 리쇼어링이 진행되면 미국 내 일자리가 24만9천~49만9천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도 있다.

홍서희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공급망 강화를 위한 리쇼어링이 증가할 경우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최종제품 가격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구조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중 분쟁 이후 경제 블록화(지역화) 양상이 심해져 국제 교역이 둔화하고, 정부 개입 확대로 자원 배분의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생산시설을 본국으로 다시 옮기는 데는 수년이 걸릴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계기로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촉진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해외 진출 국내 제조기업 중 철수를 계획하는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면 국내총생산(GDP)이 11조4천억원 증가하고 일자리 8만6천개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 자료를 내놨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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