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신냉전 구도' 표면화된 우크라이나 사태 직시해야

입력 2022-02-22 14:49
[연합시론] '신냉전 구도' 표면화된 우크라이나 사태 직시해야



(서울=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투입을 지시하면서 서방세계와 러시아가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에 돌입했다. 푸틴 대통령은 국영TV 연설을 통해 "현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이자 식민지"라며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 명목의 러시아군 배치를 공식화했다. 우크라이나의 친미 정권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러시아의 턱밑을 위협하려 한다며 전쟁 불사에 나선 것이다. 심지어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가 공격받았다는 가짜 동영상을 국영 언론을 통해 퍼뜨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푸틴 대통령의 군투입 지시가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 보장을 약속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정면으로 위배한 명백한 인접국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 행위라고 보고, 지금이라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방안이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촉구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요구로 개최된 유엔 안보리는 현 의장국이자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당사국 러시아가 버티고 있어 유의미한 결론 도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대러 제재에 나선다고 하지만, 이 또한 유가와 가스 가격 등 원자재가 상승으로 전 세계를 옥죄게 될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과의 군사 충돌 가능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군사행동에 나선 이유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의 질서를 1990년대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푸틴의 야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련 붕괴 이후 공산권 진영에 불리한 결과로 끝난 국제 질서를 처음부터 다시 협상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과거 발언에서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러시아에 벌어진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러시아의 강공 뒤에는 미국과 세계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가진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 안보에 엄중한 위협을 끼치는 활동을 하고 있고, 관련 지역의 안전도 해치고 있다"면서 NATO 확장과 미국 주도의 안보 협력체 오커스(AUKUS)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동성명으로 발표했다. 양국 관계는 유사 이래 가장 밀착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러시아가 중국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에 군사행동을 시작한 것도 중국을 의식한 행동일 것이다.

정부는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에서 이번 사태로 유가를 포함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곡물가 등의 수급 불안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전 세계 원유의 12%, 천연가스의 25%를 생산하는 러시아에 대해 서방이 제재를 가하면 원자재 공급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내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비상 대책을 세우는 것은 응당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맞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아니 더 중시하고 직시해야 할 것은 변화하는 국제정세다.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균열이 생겼고, 신흥 강국인 중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그 공백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독재국가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며 '민주주의 대 독재' 구도로 중국과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서방 대 중ㆍ러'의 군사적 대립이 표면화된 신냉전의 신호탄이자 폭풍의 중심인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인 북한, 그리고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휴전선을 사이에 놓고 대치 중인 한반도는 우크라이나보다 더 위험한 화약고다. 긴 호흡으로 세계정세를 읽어내고 국익에 맞춰 대응하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마침 대선 국면이다. 친중-반중, 친미-반미라는 구냉전의 단순 논리를 내세워 정치적 득실 다툼에 몰두하느라 새로운 국제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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