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캐리어 출범에 항공업계 '지각변동'…LCC도 장거리 도전장(종합)

입력 2022-02-22 14:32
수정 2022-02-22 14:53
메가캐리어 출범에 항공업계 '지각변동'…LCC도 장거리 도전장(종합)

대한항공·아시아나, 일부 슬롯·운수권 반납…뉴욕·런던 등 LCC 취항 가능성

중-단거리 노선 독과점·합병 시너지 약화 우려도 여전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의 탄생과 LCC(저비용항공사)들의 국제선 취항 등 항공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제선과 국내선 일부 노선의 운수권과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반납하는 조건으로 두 회사의 결합을 승인했다고 22일 밝혔다.

공정위의 조건이 통합 항공사의 점유율이 높은 노선에 신규 항공사의 진입을 유도하는 조치인 만큼 그동안 대형항공사(FSC)만 운항했던 장거리 노선에 LCC들의 취항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대부분의 일본·중국 노선이 공정위 조치 대상에서 제외돼 중·단거리 노선에서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은 국내 LCC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 공정위, 대한항공 운항 축소·LCC 신규 운항 유도

공정위는 국제선 26개, 국내선 14개 노선에서 두 항공사의 합병으로 운임 인상 등의 경쟁제한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해당 노선에서 슬롯·운수권 이전(구조적 조치), 운임 인상 제한(행태적 조치) 등의 시정 명령을 내렸다.

대한항공은 서울~뉴욕·로스앤젤레스 등의 항공 자유화 노선에서 공항 슬롯을, 서울~런던·파리 등 항공 비(非)자유화 노선에서 슬롯과 운수권을 신규 진입 항공사에 이전해야 한다.

공정위가 시정 명령을 부과한 노선 대부분은 수익성이 높은 '알짜 노선'으로 평가받는다.

서울~런던·파리 등의 유럽 노선 등은 그동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수권을 독점하고 있어 LCC의 진입 자체가 원천적으로 제한됐었다.

국내선에서도 통합 항공사가 보유하는 공항 슬롯을 반납하도록 해 LCC들의 제주 노선 운항 등이 확대될 예정이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시정 조치 이행 기간을 기업결합일로부터 10년으로 규정하면서 LCC들은 장거리 노선 운항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도 확보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10년은 기업 의사결정에 충분한 시간"이라며 "항공사들도 (해당 기간) 노선 재배분이나 포트폴리오를 다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티웨이항공[091810]은 사업성을 분석해 장거리 노선 취항 준비를 할 방침이다.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한 하이브리드 항공사 에어프레미아도 통합항공사의 노선을 가져갈 경쟁사로 꼽힌다.

외항사 역시 인천국제공항 슬롯 확보를 통해 인천 운항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 조치안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신규 진입 항공사가 특정 시간대 슬롯 이전을 요청할 경우 해당 시간대 슬롯을 내줘야 한다. 외항사도 그동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했던 인천공항 오전 시간대 슬롯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 LCC 진입 강조한 공정위…중·단거리 통합 항공사 경쟁력 '과도'

운수권·슬롯 회수 조치는 신규 진입 항공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경쟁 항공사가 특정 노선에 취항하지 않는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슬롯과 운수권은 유지되고, 독점이 불가피하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10년(시정 명령 이행 기간)간 신규 진입 항공사가 없다면 시장이 그렇게 판단한 것"이라며 "(통합 항공사가) 독점력을 남용하는 수준까지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국제선에서 경쟁 압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매우 긴요한 사항으로 국내 LCC 등의 적극적인 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합 항공사와 경쟁할 항공사는 국내 LCC이지만, LCC가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기 위해 대형기를 도입하는 등 사업모델을 전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고정비를 절감해 항공권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확보한 LCC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자칫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공정위가 일본·중국·동남아 등 중·단거리 노선의 경쟁 제한성을 작게 본 것은 LCC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단거리 노선에서 통합 항공사의 독과점이 심화되고, 장거리 노선에서는 LCC 대신 외항사가 진입해 국가 항공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공정위는 경쟁 제한성을 판단할 때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을 묶어 서울 노선으로 획정했다. 김포공항 출발·일본 하네다공항 도착 노선은 비즈니스 수요가 중심이고, 수익성이 높은 '알짜 노선'인데 공정위는 인천~나리타 노선에서 LCC들이 운항 중이라는 이유로 일본 노선의 경쟁 제한 우려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김포와 인천 출발 일본 노선은 서로 대체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국내 승객의 외항사 대체성이 낮고 구매 전환이 쉽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중국 노선에 대해서는 중국 대형 항공사가 운항 중이라는 이유로 경쟁 제한 우려가 없다고 했다"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라고 지적했다.

◇ 국제선 운항 축소에 통합 항공사 합병 시너지 약화 우려

대한항공은 신규 항공사의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공정위의 운수권·슬롯 이전 조치를 수용했다.

대한항공은 "이번 공정위의 결정을 수용하며, 향후 해외지역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통합 항공사의 운항 축소와 슬롯 이전으로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공항을 허브로 가진 해외 항공사는 이미 압도적인 슬롯을 보유하고 있는데 해외 공항에서 통합 항공사의 운항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시드니 등 해외 주요 공항에서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슬롯 점유율은 0.2~0.5%에 불과하다.

노선별 공급 좌석 수를 2019년 공급 좌석 수 대비 일정 비율 미만으로 축소하지 못하도록 한 공정위의 조치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항공 좌석은 저장 또는 사후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소 공급량을 설정하면 수요가 줄어들 때 공급이 과잉될 가능성이 있다.

공급이 과잉되면 가격이 하락하고, 경쟁사가 운항을 포기하거나 신규 진입 계획까지 철회할 수 있다.

또 공급량이 의무적으로 정해지면 항공사는 승객 수에 따라 항공기를 교체하는 등의 유연한 기재 운영이 어렵다. 좌석 수 제한으로 신규 항공기 도입 등도 어려워지면서 노후 기종의 운항도 길어지게 된다.

이밖에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시정 조치 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이행감시위원회를 통해 감시하는 것이 대한항공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항공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외부 변수에 큰 영향을 받는 점을 고려하면 공급과 운임 등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p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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