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분쟁지 독립선포 뒤 파병 지시…'침공 초읽기'(종합)
푸틴, 우크라 내 도네츠크·루간스크 분리독립안 승인 후 군진입 지시
유엔 "우크라 주권 침해" 미국 등 서방 대러 제재 착수
협상교착 속 안보리 긴급회의
(모스크바·워싱턴·브뤼셀=연합뉴스) 유철종 류지복 김정은 특파원 = 러시아가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지역의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러시아군을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이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명백한 주권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고 제재에 나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은 일촉즉발 수준으로 격화했다.
◇ 푸틴, 반군지역 독립·지원 밝힌 뒤 '평화유지군' 파병 지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있는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그는 DPR, LPR 지도자들과 우호·협력·원조에 관한 조약도 맺었다.
푸틴 대통령은 서명 수시간 후 자국 국방장관에게 이들 두 공화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라고 지시,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군 배치를 공식화했다.
그는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역사의 핵심적인 부분이며 동부는 러시아의 옛 영토"라며 국민이 자신의 결정을 지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푸틴 대통령의 지시 뒤 이례적으로 긴 군사장비 행렬이 도네츠크를 지나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자들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자신들도 독립하겠다며 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이 지역에선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의 분쟁이 이어졌다.
2015년 협화협정인 민스크 협정으로 대규모 교전이 중단됐으나 산발적 교전은 8년째 계속돼 지금까지 1만4천여명이 숨졌다.
러시아의 이날 친러반군 지역 분리독립 선포와 지원 약속, 파병 지시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공개적으로 군대를 파견할 길을 연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주권침해라고 반발하고 "러시아가 어떤 성명을 내든 우크라이나의 국경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 유엔 "우크라이나 주권침해"…서방 대러제재 착수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경악한 서방은 곧 제재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결정은 우크라이나 영토 보존과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의 이 같은 행보를 심각한 국제법 위반으로 보고 제재를 경고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두 공화국에 미국인의 신규투자, 무역, 금융을 금지하고 이 지역 인사들을 제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결정이 외교적 해법에 반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에 대한 지지는 변함 없다"고 밝혔다.
EU도 푸틴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며 러시아를 겨냥한 집단 제재 논의에 착수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공동성명을 통해 "EU는 이 불법행위에 관여한 이들에 제재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평화적 해결 노력을 훼손했다"고 러시아를 비판했다.
영국도 금융, 국방, 통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러시아 기업인과 개인을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발표된 제재는 러시아의 침공을 대비해 준비한 광범위한 제재와는 별개라고 밝혔다.
◇ 침공 가시화에 협상 전망은 암울…백척간두에 선 우크라
러시아가 작년 말부터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군대를 대규모로 증강하자 서방은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를 제기하며 외교를 통한 해결책 마련에 주력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의도가 없고 훈련이 끝나면 부대를 복귀시킬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국은 푸틴 대통령이 이미 침공을 결심했다며 언제라도 공격이 가능하다고 경계해 왔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병력 투입을 지시함에 따라 긴장 고조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러시아 군대가 평화유지 명분이더라도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할 경우 무력분쟁과 함께 사태가 극도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이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을 증강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작년 4월 나토 가입 의사를 밝혔고 나토 동맹국들은 문호가 개방돼 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서방과 러시아는 서로의 제안을 담은 공식서면을 교환하고 정상간 릴레이 회담을 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중단, 동유럽 나토군 철수 등을 요구해 왔다.
러시아의 이날 결정은 오는 24일 예정된 미·러 외교장관 회담에도 악재로 관측된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군사적 조처를 할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군사 조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근거를 둔 정상회담을 약속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의 움직임이 예전보다 노골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은 탱크가 실제 굴러갈 때까지 외교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결정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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