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함께' 사라진 자리에 우뚝 선 '중국 애국주의'
美 대신 中 택한 '구아이링' 등 선전에 14억 열광…국민 결집 기회
성화주자 논란 이어 '텃세판정' 논란…국제사회 시선 냉랭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함께 하는 미래'(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구호)에서 '함께'가 보이지 않는다. 9일로 6일차를 맞이한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중국만의 잔치'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회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몇몇 서방 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정부 관계자를 파견하지 않는 것) 속에 전 세계가 축하하는 '평화의 제전'이 되긴 애초부터 어려웠지만 개막 이후 중국과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14억 중국인들은 자국의 초반 메달 레이스 주도를 즐기며 열광하고 있다. 4년 전 평창대회에서 금메달 1개(은메달 6개·동메달 2개)로 16위에 자리했던 중국은 대회 5일차인 8일까지 금메달 3개를 수확하며 공동 3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출생국인 미국 대신 중국 대표로 뛰기를 택한 에일린 구(중국명 구아이링)가 중국엔 불모지나 다름없던 스키 프리스타일에서 금메달을 따내자 대륙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 온라인판은 9일 중국의 상징물인 용이 황금색으로 새겨진 경기복을 입고 있는 에일린 구의 모습을 최상단에 실었다.
중국 선수들의 선전 속에 대회 마스코트인 '빙둔둔(氷墩墩)' 관련 기념품들은 품귀 현상을 보일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대회 조직위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감안해 일반인에게 입장권을 팔지 않기로 하면서 축제보다는 '방역 올림픽'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소한 중국 입장에서 그런 우려는 '기우'로 귀결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런 가운데, 중국 중앙TV(CCTV) 등 관영 매체들은 중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과 인터뷰, 국가가 울려 퍼지는 금메달 시상식 장면을 반복적으로 방영하며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있다.
또 중국 포털 사이트와 SNS에서는 중국 선수들의 선전을 칭송하는 한편 한국발 판정 문제 제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지난 1일 개봉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영화 장진호 속편의 흥행 질주와 함께, 베이징올림픽은 중국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인 애국주의를 또 한번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밖의 시선은 싸늘하다.
성화 봉송 주자 선정에서부터 중국의 애국주의와 서방의 '스포츠 정치화' 시각이 충돌했다.
신장(新疆) 출신 위구르족 스키 선수 디니거 이라무장과 2020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지역인 갈완 계곡에서 벌어진 양국 군인들 간의 '몽둥이 충돌'에서 부상한 뒤 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은 인민해방군 장교 치파바오를 성화 봉송 주자로 각각 내세운 것이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신장 인권탄압을 명분으로 외교 보이콧을 선언한 미국은 중국이 이라무장을 내세움으로써 인권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고, 인도는 '올림픽의 정치화'라며 뒤늦게 외교 보이콧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신장 위구르족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춤으로써 서방의 위구르족 인권 문제 지적에 맞서고 자국 영토를 지키기 위해 외국 군인들과 맞서 싸운 영웅을 높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중국의 '굴기'를 경계하는 중국 밖의 시선은 차가웠다.
여기에 쇼트트랙, 스키 점프 등에서 불거진 심판 판정 논란은 대회의 오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올림픽에서의 판정은 해당 경기연맹의 각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판진이 하는 것이지만 논란이 된 판정 몇 건이 중국 선수들의 메달로 직결되면서 '홈 텃세 판정' 논란이 제기됐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 외교에서도 '평화 기여' 보다는 '진영 강화'가 두드러졌다.
시 주석은 개회식 당일인 4일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계기로 서방과 러시아가 대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러시아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긴장 완화에 기여하는 메시지를 내기보다는 중·러 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에 맞설 '근력'을 과시하는 쪽에 주력하는 듯했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은 애국주의로 더욱 단결하고, 중국 밖의 세계 여론은 중국의 부상을 더욱 경계하게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국 지도부로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연장이 걸린 하반기 제20차 당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올림픽을 국민 단결 강화의 동력으로 삼는 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는 자평을 할 만하다.
이번 대회가 중국의 외교적 외연 확장에 도움 되지 않는다면 '구심력 강화'에 적극 활용하려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이머우(張藝謨) 감독(개회식 총연출)은 개회식에서 '인류운명공동체'의 메시지를 부각했지만 중국의 '굴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를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굳히게 만드는 올림픽이 되어가는 양상이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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