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막힌 뉴질랜드 임신 여기자 "탈레반에 의지…아이러니"
방역 격리 문제로 귀국 못하고 카불서 대기…탈레반은 복귀 환영
"탈레반에 여성 인권 따졌는데 이젠 우리 정부에 같은 질문"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임신한 뉴질랜드 여기자가 방역 격리 문제 등으로 인해 귀국길이 막힌 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기자 출신인 샬럿 벨리스는 지난 29일자 뉴질랜드헤럴드 기고문을 통해 이같은 상황을 전했다.
벨리스는 기고문에서 "탈레반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는데 이제는 나의 정부에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며 이 얼마나 잔인한 아이러니냐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미혼으로 임신한 여성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면 당신의 상황은 엉망이 되고 만다"고 설명했다.
임신한 자신이 모국에서 외면당한 후 여성 탄압으로 악명 높았던 탈레반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뉴질랜드 정부는 현재 자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규정에 따라 귀국하는 자국민에게도 10일간의 의무 시설 격리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이 시설은 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귀국을 원하면서 수천 명 이상이 빈자리를 찾지 못한 채 해외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아프간에서 취재하던 벨리스는 지난해 9월 알자지라의 본사가 있는 카타르로 돌아갔고 프리랜서 사진기자 짐 휴일브룩과 사이에서 아기를 가진 것을 알게 됐다.
벨리스는 같은 해 11월 알자지라를 그만둔 후 휴일브룩의 고향인 벨기에로 향했다. 카타르에서는 미혼 여성이 임신하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벨리스는 벨기에에서도 현지 국민이 아닌 탓에 길게 체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는 출산을 위해 뉴질랜드에 긴급 귀국 신청을 했다.
벨리스는 "59건의 서류를 구비해 신청했지만, 요청이 거절됐다"며 "우리 커플이 비자를 갖고 체류할 수 있는 곳은 아프간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벨리스는 탈레반 고위 관계자에게 연락했고 "아프간으로 돌아와도 좋고 당신은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받았다.
관계자는 "상황이 악화하면 우리에게 전화해라. 걱정하지 말라"고 벨리스의 복귀를 환영했다.
결국 벨리스 커플은 이달 초 아프간 수도 카불로 돌아간 상태다.
벨리스는 하지만 의사들은 의료시설이 열악한 아프간에서의 출산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며 귀국해 출산하는 게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거절됐던 신청이 재검토되고 있지만 아직 귀국 승인은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뉴질랜드 당국은 벨리스의 상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코로나 대응 장관은 벨리스의 요청과 관련해 적절한 절차를 따랐는지 살펴보라고 관계 직원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1차 집권기(1996∼2001년) 때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앞세워 여성의 외출, 취업, 교육 등을 엄격하게 제한한 바 있다.
재집권 후에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포용적 정부 구성, 여성 인권 존중 등 여러 유화 조치를 발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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