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중앙은행, 서로 다른 방향으로 '민첩한' 행보

입력 2022-01-30 06:31
미중 중앙은행, 서로 다른 방향으로 '민첩한' 행보

연준, 돌연 매파로 변신해 공격적 통화긴축 예고

인민은행, 두 달 연속 금리 인하하며 경기부양 의지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의 중앙은행이 '신속한 움직임'을 천명했으나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다음 달 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강한 긴축 움직임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파월 "민첩할 필요 있어"…매파로 변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묻는 말에 "겸손하고 민첩할"(humble and nimble)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는 연준이 2015년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 시장에 "단지 점진적"(only gradual)으로 올릴 것으로 예고한 것과 사뭇 다른 어조다.

파월 의장은 최근 들어 '민첩한' 입장 변화를 보여 왔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을 거듭할 때마다 이는 '일시적'(transitory) 현상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그해 11월 30일 미 의회에 출석해 돌연 매파적(통화긴축적) 모습으로 전환했다.

더는 '일시적'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고 말하면서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도 서두르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 작년 12월 FOMC 회의 의사록을 통해 연준 보유자산을 축소하는 '양적 긴축'도 논의하고 있음을 알려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번 FOMC 회의 후엔 매파적 발언의 수위를 한층 높여 이젠 올해 기준금리 인상이 4회는 기본이고 여기서 추가로 더 올릴 것인지가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또한 연내 양적 긴축 개시도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 인민은행 "서둘러 앞서 나가겠다"…2달 연속 금리 인하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도 비슷하게 민첩한 움직임을 예고하는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류궈창(劉國强) 인민은행 부행장은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최로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일을 서둘러 앞서 나가면서 시장의 보편적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며 신속한 움직임을 천명했다.

인민은행은 실제로 행동에 나섰지만, 방향은 연준과 반대로 통화 완화적이었다.

인민은행은 이틀 후인 20일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내렸다. 지난해 12월에 이은 두 달 연속 인하였다.

인하 폭도 전달 0.05%포인트에서 이번에 0.1%포인트로 확대했다.

또 전달에 동결했던 5년 만기 LPR도 0.05%포인트 내렸다. 5년 만기 LPR은 주택담보대출과 연동되는 금리로, 2020년 4월 이후 21개월 만의 인하였다.

시중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라는 신호다. 실제로 류 부행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금융기관들이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지 말고 능동적으로 출동"해야 한다고까지 노골적으로 말했다.



◇ 차가워지는 중국 경제…회복 중인 미국 경제

양국 중앙은행의 엇갈린 행보는 당연히 자국 경제상황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2020년 2.3%로 주요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를 기록한 후 지난해엔 8.1%로 한층 더 높아졌다.

하지만 추세를 보면 부정적이다.

지난해 1분기 18.3%라는 놀랄 만한 수치를 보이고선 2분기 7.9%, 3분기 4.9% 4분기 4.0%로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올해 사정도 밝지 않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올해 중국 성장률 전망치의 시장 평균은 5.2%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망치가 내려가는 추세다. 예컨대 골드만삭스는 지난 11일 보고서에서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4.8%에서 4.3%로 낮췄다.

국제기구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5일 '세계경제전망 수정' 보고서에서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6%에서 4.8%로 0.8%포인트나 내렸다.

중국 성장률이 5%를 밑돌았던 적은 톈안먼(天安門) 광장 학살 관련 국제 제제로 3.9% 성장에 그친 1990년 이후로는 없었다.

이에 앞서 작년 말 세계은행(WB)은 올해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5.4%에서 5.1%로 조정한 바 있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이런 시각 조정의 큰 부분은 헝다(恒大·에버그란데) 디폴트 사태로 냉각된 부동산 시장이 중국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부동산 부문이 직간접적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30%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 봉쇄라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점도 내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부동산 시장 침체와 코로나19 봉쇄조치가 맞물리면 그 영향이 심각할 수 있다며 인민은행도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올해 성장률이 2%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 경제는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성장률 지표를 보면 2020년 -3.4%에서 지난해 5.7%로 플러스로 돌아섰다. 특히 지난해 성장률은 1984년 7.2% 이후 37년 만의 최대폭이었다.

올해는 IMF 기준으로 4.0% 성장할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은 또한 인플레이션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도 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0%로 39년여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뜨겁다.

이에 비해 중국은 연간 물가 상승률이 2020년 2.5%에서 지난해 0.9%로 오히려 더 안정됐다.

◇ "자금 유출 우려되는데 금리 올려야 하나"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중앙은행은 연준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전망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 이들 국가는 낮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 자금이 유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기준금리 자체가 3.7%로 높을 뿐만 아니라 외환보유액이 풍부해 자금 유출을 감내할 수 있지만 다른 국가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2천224억달러로 세계 1위다. 2위인 일본(1조4천58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다음 달 1일 호주를 시작으로 인도와 태국(9일), 인도네시아(10일), 필리핀(17일), 뉴질랜드(23일), 한국(24일)의 중앙은행들이 줄줄이 통화정책 결정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부터 3차례에 걸쳐 금리를 코로나19 직전 수준인 1.25%까지 올렸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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