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제로' 방역에 삼천리 헛걸음한 소녀…대륙 '분통'
조부모 만나러 베이징→하얼빈 이동했다가 2주 격리 지침에 발 돌려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앞두고 조부모를 만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1천200여 km 떨어진 하얼빈(哈爾濱)까지 갔다가 '2주 격리' 지침을 통보받고 발걸음을 돌린 소녀들의 이야기에 중국 네티즌들이 가슴을 치고 있다.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달아 나오면서 베이징 왕래객에 대한 '경계'가 강화된 상황과 각 지방 정부의 융통성없는 방역 정책 집행이 만든 서글픈 풍경이었다.
26일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올라온 사연과 영상에 따르면 하얼빈에 사는 자오(趙) 모(某) 씨의 두 손녀(5세, 12세)는 외할머니와 함께 지난 23일 베이징발 하얼빈행 열차를 타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자오 씨는 손녀가 사는 베이징시 하이뎬(海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불안감이 있었지만 손녀의 집이 있는 동네는 '저위험 지역'으로 분류돼 있었던데다 하얼빈역 역무원으로부터 '베이징에서 열차를 탈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듣고 안심했다.
그러나 23일 결국 자오씨는 하얼빈역에 도착한 손녀들을 먼발치서 바라만 보았을 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베이징시 하이뎬구에서 온 사람은 모두 14일간 시설에서 격리한다는 하얼빈 당국의 지침 때문이었다.
12살 손녀의 방학이 12일 밖에 남지 않았기에 손녀들은 곧바로 베이징행 열차를 타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자오씨는 '굳이 저위험 지역에서 온 사람까지 격리해야 하느냐'고 관계자에게 읍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할머니가 안타까운 마음에 역사 윗층에서 손녀들에게 초콜릿 등 간식을 던지고 손녀들은 바닥에 떨어진 초콜릿을 줍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SNS에 공개되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네티즌들은 하얼빈 당국의 조치를 '무능한 행정'이라며 비판했다.
한 네티즌은 댓글에서 "코로나19는 이미 의학 문제에서 정치 문제로 변했다"며 "어떤 지방이든 감염자가 나오면 담당자는 문책을 당하고 평생의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만다"고 썼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인간성과 정은 없으며, 사회·경제 발전과 사람들의 일상 생활은 일절 고려되지 않는다"며 "현 단계에서 코로나만 나오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문제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제로 코로나'에 따른 인도적 문제와 민생 문제들이 최근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말부터 30여일 간 도시 전체가 봉쇄됐던 시안(西安)에서는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공무원들이 엄격히 적용하면서 병원 문 앞에서 진료를 받지 못해 숨지거나 유산하는 일도 있었다.
네티즌의 지적처럼 공무원 사회에서 '확진자 제로' 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일부 지방에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지 않은 '초(超)고강도 격리 지침'이 융통성 없이 집행되고, 수시로 바뀌는 방역 지침이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통에 여기저기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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