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불평등의 팬데믹"…지구촌 소득·소비 양극화 심화
경제력·백신 접종률 격차에 빈국 고통…소득 제자리에 빚만 늘어
부자는 '코로나 특수'로 재산 불려…"부유세로 불평등 해결" 주장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글로벌 소득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미약한 경기 회복은 국가 간 불평등을 2010년 초 수준으로 되돌릴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은행은 이달 11일(현지시간) 내놓은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 20년간 이룬 불평등 개선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일부 수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각국의 경제력과 백신 접종률 격차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 국가 내에서도 주식, 부동산 등의 보유 여부와 자산 가격이 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 코로나로 커진 국가간 불평등…가난한 나라는 빚에 '허덕'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올해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세계가 국가 간, 국가 내 커지는 소득 불평등을 맞닥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인당 소득이 선진국은 5% 증가한 반면 저소득국은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게 맬패스 총재의 설명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동원하며 통화정책을 편 선진국과 그러지 못한 나머지 국가의 경제력 격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미국 등 일부 부유한 나라가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초기에 싹쓸이해 논란을 빚은 백신 불평등과도 연결된다.
가난한 나라들은 코로나19로 빚에 허덕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은행을 인용해 올해 74개 최빈국이 갚아 할 외채(국가·민간부문 포함)가 350억달러(42조원)로 2020년보다 45%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들 국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빚을 많이 낸 데 따른 것이다. 스리랑카와 가나, 엘살바도르, 튀니지 등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마저 나온다.
◇ 부자는 "초저금리 속 증시 호황 누려"…소비도 양극화
부자들은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다.
국제구호기금 옥스팜은 세계10대 부자의 재산이 지난 2년 사이에 7천억달러(836조원)에 서 1조5천억달러(1천791조원)로 2배 넘게 불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인구 99%의 소득이 감소하고 1억6천만 명 이상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현실과 대조된다.
옥스팜은 "새로운 억만장자가 26시간마다 생기는 가운데 이런 불평등이 의료 접근성 부족, 기아 등으로 이어져 4초마다 한 명씩 숨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세계 500대 부자의 순자산은 지난해 1조달러(1천194조원)가 늘었다.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은 증시 호황, 가상화폐 열풍, 부동산 가격 상승 등에 힘입은 것이다. 지난해 2분기 기준 미국에서 상위 10%의 부자들이 전체 미국 주식 중 89%를 보유해 사상 최대를 기록한 점을 비춰볼 때 주식 투자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고통은 커졌지만 부자도 늘어났다.
KB경영연구소의 '2021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인 개인은 39만2천명으로 1년 사이에 3만9천명 늘었다. 주식가치 급등 덕분으로, 전체 인구에서 이들 부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0.76%로 0.07%포인트 커졌다.
스위스계 투자은행(IB) 크레디트 스위스의 '2021 글로벌 웰스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100만달러(12억원)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한국인 백만장자는 105만명이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인 백만장자가 2025년에는 177만명으로 5년 사이에 68.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의 양극화도 두드러진다.
'부의 상징'으로 불리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 최고급 자동차 판매가 코로나19와 반도체 부족 사태에도 호조를 보였다. 롤스로이스의 경우 지난해 5천586대를 팔아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마틴 프리츠 롤스로이스 미국법인 사장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주식과 가상화폐로 부자가 된 젊은 기업인을 포함해 첫 롤스로이스 구매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억원 이상인 수입차가 6만5천148대 팔려 전년보다 50.9%나 늘었다.
◇ 부국-빈국 양극화 심화 우려…부유세 부과 주장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부의 불평등이 한 국가만이 아닌 지구촌 문제로 커짐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한층 중요해졌다.
FT에 따르면 아이한 코세 세계은행 경제전망 담당 국장은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선진국과 같은 대규모 재정·통화 정책을 펴지 못하는 현실을 거론하며 "여러 세대에 걸쳐 번질 불평등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고 지적했다.
코세 국장은 "전 세계 많은 인구가 백신을 맞지 않은 채 코로나19 대유행을 극복할 수 있는 척한다"며 선진국의 과감한 지원을 촉구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상이 부국과 빈국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진국의 금리 인상이 신흥국의 자금 조달 비용 증가와 자본 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상황에서 부유세를 걷어 불평등을 줄이자는 일부 부자들의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월트 디즈니 가문의 상속자 애비게일 디즈니 등 전 세계 102명의 부자로 구성된 '애국적 백만장자들'이라는 단체는 지난 18일 공개서한을 통해 "현재의 조세 체계는 공정하지 않다"며 부유세 도입을 요구했다. 부유세를 걷어 코로나19 대응과 빈곤층 지원에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국제 사회운동단체 '불평등투쟁동맹',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 옥스팜, 애국적 백만장자들은 공동 보고서에서 부유세를 연간 2조5천200억달러(3천9조원) 거두면 23억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고 전 세계에 충분한 백신을 만드는 것은 물론 빈곤층에 의료·사회보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00만달러(6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자들에게 2~5%의 부유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는 순자산 500만달러 이상인 개인이 7만2천640명 있다. 이들의 총 순자산은 1조3천500억달러(1천611조원)로, 연간 358억달러(42조7천억원)의 부유세를 걷을 수 있다. 이는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의 4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IPS의 경제 불평등 전문가인 척 콜린스는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글로벌 부의 집중이 생기면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세계 최고 부호들에게 0.1%의 세금(부유세)만 매겨도 보건·사회 보호 서비스에 필요한 공공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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