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D-10] 광주 붕괴사고에 산업계 초비상…"처벌 1호는 피하자"

입력 2022-01-17 07:11
수정 2022-01-17 09:08
[중대재해법 D-10] 광주 붕괴사고에 산업계 초비상…"처벌 1호는 피하자"

건설·철강·발전·화학업계 등 막판 점검…조직-인사 안전강화에 초점

법시행 첫날 안전점검의 날 지정하고 27일부터 설연휴 시작 건설업체도

오너 등기임원 사퇴에 '꼼수' 지적도…경제단체들 "법 수정 필요" 주장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17일로 꼭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미 지난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는 조직과 인력을 재편하는 등 내부 준비를 해 왔지만, 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가 발생하자 자칫 1호 처벌 대상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 막판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재해 사고와 처벌 주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법 수정 내지 보완을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 건설·철강·발전·화학 등 사고 경험 많은 기업들 '긴장'

업무 특성상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설, 철강, 발전, 화학업종의 긴장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신축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를 계기로 책임자 처벌 강화 등의 목소리가 커지자 건설업계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산업안전특별법과 곧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 더해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건설안전특별법까지 제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 위반 사업장 1천243곳의 명단을 보면 건설업이 59%에 달했다. 또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중 사망재해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업장의 71%가 건설업체였다.

잔뜩 움츠러든 건설사들은 일단 '1호 처벌'만은 피하고 보자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 대형건설사는 동절기 주말에는 아예 작업 금지 원칙을 세웠다. 불가피한 현장에 대해서는 사업본부별 안전 대책을 수립·운영하도록 했다.

또 다른 대형건설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오는 27일을 '현장 환경의 날'로 지정해 정리 정돈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현장에 남길 계획이다.

29일 시작되는 설 연휴를 아예 27일로 앞당겨 미리 휴무에 들어가는 건설업체도 있다.





철강업계의 경우 "모든 업무 현장에서 안전을 최우선 핵심 가치이자 기업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의 올해 신년사에서 긴장된 내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포스코[005490]는 이미 지난해 3월 대표이사 사장 직속으로 포항과 광양제철소를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했다. 또 제철소 안전환경 담당 부소장이 안전 분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발전 분야 업무를 타 부서로 이관하고, 현장 안전환경 조직체계도 강화했다.

지난해 말 협력업체 근로자의 감전 사망사고가 발생한 한국전력[015760]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감전·끼임·추락 등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3대 주요 재해'에 대해서는 미리 정한 안전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현장 작업을 진행한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20대 비정규직 근로자가 혼자 근무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사고가 발생한 한국서부발전도 본사의 안전조직을 사장 직속으로 승격시킨 동시에 태안과 평택발전본부에 현장안전팀을 신설하고 안전 인력도 보강했다.



롯데케미칼[011170]은 2020년 3월 충남 서산 대산공장 폭발사고로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향후 3년간 안전환경 부문에 5천억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안전환경 전문가를 2배로 확대하기로 한 상태다. 특히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경영 성과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한 LG화학[051910], LG디스플레이[034220]도 별도의 안전 관리 콘트롤타워를 두고 환경·안전 설비 투자를 늘리는 등의 대책을 시행 중이다.

◇ '안전'에 초점 맞춰 조직개편하고 인사 단행…협력사들도 지원

주요 기업들은 지난해 말 단행한 조직 개편과 인사에서 '안전 강화'에 힘을 실었다.

현대차[005380]는 현장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과 인원을 확충하고, 조직별 핵심성과지표에 '중대재해' 예방 관련 비중을 확대했다. 도급자 안전관리를 위한 전산시스템 등 예방 시스템도 마련했다.

LG전자[066570]는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주요 리스크 관리 조직'(CRO)을 신설하며 전사적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안전환경담당도 지정했다.

SK하이닉스[000660]는 기존의 '개발제조총괄'을 '안전개발제조총괄'로 확대 개편하고, 곽노정 사장에게 이 조직의 장을 맡겼다.

포스코는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상무보급 전체 승진 인원의 40%를 현장 출신으로 채웠다. 현장 생산과 안전의 중요성을 고려한 조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실천하기 위해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등 전사적 역량을 쏟고 있다. 건설기계 계열사인 현대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는 양사 모두 외부기관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있고, 결과에 따라 내부 체크리스트와 매뉴얼도 만들어 실행할 계획이다.

협력사 직원의 산업 재해 사고에 대해서도 원청 업체의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주요 기업들은 협력사의 안전 관리까지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매달 협력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열어 환경안전법규 동향 등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작업중지권제도 활성화, 위험 예지 훈련 대회, 위험성 평가 교육 등을 진행한다.



◇ 사고 시 오너 책임 회피?…경제단체 "현장 혼란 가중" 지적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 발생에 대비해 법적 책임을 분산하는 차원으로 보이는 조직 개편도 잇따르고 있다. 이를 두고 사주(오너)의 법적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주 경영 체제인 호반건설은 '최고안전보건책임자'(Chief Safety Office·CSO)를 선임하고, 나아가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외에 여러 중견 건설사 사주들도 지난해 잇달아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 역시 지난해 5월 한국 쿠팡의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는데 당시 이를 두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차원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을 앞두고 시행한 조치는 아니지만 정용진 부회장이 2013년에 일찌감치 신세계[004170]와 이마트[139480]의 등기임원에서 모두 사퇴했다.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역시 미등기 임원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2020년 롯데쇼핑[023530]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산업계에서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 고의와 과실 기준 등에 대한 법 규정이 여전히 모호해 혼란이 불가피하며 결과적으로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36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는 지난해 8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이 경영 책임자의 의무를 불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정부에 공식 제출한 데 이어 지속적으로 개선 또는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처벌이 어느 선에서 끝날지 아직 알 수가 없어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사전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며 "중대재해처벌법 1호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모두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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