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경찰에 168억 상납받아…前 중국공안 2인자의 부패상
CCTV 반부패 다큐, 쑨리쥔 고발…"작은 해산물 상자에 30만불씩 받아"
공안내 파벌 만들어 '내 사람' 끌어주고 정보 받는 부당거래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관료가 되는 것과 부를 쌓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고 잘못 믿었다."
한때 중국의 경찰 조직인 공안부 2인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쑨리쥔(孫力軍·53) 전 공안부 부부장의 회한 가득한 고백이다.
중국 관영 중앙TV(CCTV)는 최고위 사정당국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기율·감찰위)와 함께 제작한 반부패 다큐멘터리 시리즈 '무관용' 제1편을 15일 방영했다.
쑨 전 부부장은 1편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다큐멘터리는 그의 죄상을 시청자에게 고발하고 자아비판을 육성으로 전했다.
그는 2018년 공안부 부부장에 임명된 엘리트였지만 2020년 4월 기율과 법규 위반 혐의로 기율·감찰위 조사를 받으면서 낙마했고 작년 당적이 박탈됐다.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이 지난 13일 쑨 전 부부장을 수뢰, 증권시장 조작, 총기 불법 소지 등 혐의로 최근 기소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데 이어 관영매체가 그의 부패상을 낱낱이 전했다.
CCTV에 따르면 대학 졸업후 철강제품 판매에 종사하던 쑨리쥔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보건 분야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공직을 돈벌이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했던 것인지 그는 한 제약회사 사장과 수익을 3대 7로 나누기로 하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이 회사가 일선 병원에 약을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왔다.
CCTV 인터뷰에서 쑨리쥔은 "관료가 되는 것과 부를 쌓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고 잘못 믿었다"고 말했다.
2008년 베이징으로 영전한 쑨리쥔은 자신의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해 사업가들에게 편의를 주는 대가로 엄청난 뇌물을 받았다. 그를 수사한 전담팀은 고액의 현금다발과 고급시계, 금붙이, 최고급 술인 마오타이와 고급 보이차 등을 압수했다.
쑨리쥔은 자신처럼 부친 도움으로 공직에 들어선 '부패경찰' 왕리커 전 장쑤(江蘇)성 정법위 서기를 만나면서 더욱 깊은 부패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주택 관리 업종에서 일하던 왕리커는 아버지의 도움 속에 경찰이 돼 일선 경찰관, 파출소 부소장을 거쳐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시 공안국 부국장,다롄(大連)시 공안국 국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갱단과 손잡고 갱단이 운영하는 사업의 뒤를 봐주며 치부했다.
쑨리쥔은 공안부 판공청 부주임 시절인 2008년 당시 다롄시 공안국장이던 왕리커를 만나 100만 위안(약 1억8천700만 원)이 든 은행 카드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에게서 정기적으로 상납받았다.
쑨리쥔이 왕리커에게 받은 금품을 환산하면 9천만 위안(약 168억 원) 상당 이상이었다고 CCTV는 보도했다.
쑨리쥔은 CCTV 인터뷰에서 "(왕리커가) 1년에 4∼5번 정도 베이징에 오는데 매번 작은 해산물 상자에 30만 달러(약 3억6천만 원)를 넣어서 줬다"며 "그가 장쑤성에서 부성장, 공안청 청장, 당위원회 상무위원, 정법위 서기 등을 역임하는 과정에서 내가 도와줬다. 그를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내 힘은 더 커졌고 더 엄중한 죄를 지었다"며 "예를 들어 그전에는 교통신호를 위반한 적이 없었는데 공안부에 부임하고 나서는 신호위반을 매우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아주 작은 예이지만 정신적으로 긴장을 풀었고 심리적으로 뒤틀렸다"고 털어놨다.
쑨리쥔은 공안부에서 자신의 파벌을 만드는데도 열을 올렸다.
왕리커 뿐 아니라 덩후이린 전 중앙정법위 판공실 주임, 궁다오안 전 상하이시 공안국 국장, 류신윈 전 산시성 공안청 청장 등이 공안분야 거물급 인사가 이른바 '쑨리쥔 사단'으로 드러나 차례로 옷을 벗었다.
일례로 쑨리쥔은 2010년, 전국 도시별 공안국장 수련회에서 후베이(湖北)성 셴닝(咸寧)시 공안국장이던 궁다오안을 찍었고 그의 자녀 주거문제 등을 해결해 주는 등 호의를 베풀며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왕리커에게 돈을 받았던 그는 반대로 궁다오안에게는 돈을 풀어가며 관리한 것이다.
'자기 사람'으로 지목한 사람에게는 부하들을 동원해 업무를 도와주는 한편 자리와 돈을 제공하고 그로부터 각종 정보를 받는 식으로 '부당 거래'를 했다.
쑨리쥔은 "내 문제는 주로 이상과 신념을 잃어버린 것이었다"며 "나는 공안요원으로서 공평과 정의의 수호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법치 건설과 공정·정의의 파괴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자신의 장기집권에 분수령이 될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연초부터 기율을 강조하고 반부패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쑨리쥔은 따르지 말아야 할 대표적 '역(逆) 모델'이 된 양상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 때 "부패 문제를 특히 결연히 조사해 처리하라"며 "당내의 정치 무리, 소그룹, 이익집단에 가담하는 자는 가차 없고 결연히 조사해 처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부패와 소그룹, 이익집단 등 시 주석이 당시 지적한 문제를 체화한 인물로 쑨리쥔을 부각해 당내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쑨리쥔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최측근이었던 멍젠주(孟建柱) 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의 직속 부하였다는 점에서 장쩌민파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중국 당국이 쑨리쥔의 죄상을 부각하는데 대해 시 주석의 '정적 그룹'으로 꼽히는 장쩌민파에 대한 견제의 메시지로 보는 해석도 나온다.
쑨리쥔이 공안부의 2인자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운 '윗선'은 이번 다큐멘터리에 등장하지 않는데 그 부분이 당 대회를 앞두고 당내 장쩌민 세력을 견제하는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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