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성범죄자 선처한 美 판사, 형사재판권 박탈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 지방법원 판사가 졸업 파티서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10대 남학생을 선처했다가 형사재판 주재권을 박탈당했다.
일리노이주 8지구 순회법원 수뇌부는 14일(현지시간), 최근 성폭행 사건에 대한 판결로 물의를 빚은 로버트 에이드리언 판사(64)를 소액사건재판·검인·분쟁조정 등 작은 민사사건 담당으로 재배치했다고 밝혀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인사명령은 즉각 발효됐고, 에이드리언 판사에게 할당됐던 재판들은 다른 판사들에게 넘겨졌다.
에이드리언 판사는 지난 3일 열린 재판에서 성폭행 혐의를 받는 올해 18세인 드루 클린턴에 대해 "체포 이후 지금까지 148일간의 수감이 충분한 처벌이 됐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 여론의 반발을 샀다.
일리노이 중서부 소재 퀸시고등학교 풋볼선수였던 클린턴은 작년 5월 졸업파티 뒷풀이 장소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캐머런 본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기소됐으며 작년 10월 3개 혐의 가운데 1개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일리노이 주법상 성폭행 혐의에 대해 유죄가 확정되면 법원은 최하 징역 4년형을 선고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지역매체 '헤럴드-휘그'가 재판기록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판사는 "클린턴은 이미 5달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충분한 벌을 받았다"며 그를 4년 이상 교도소에서 썩히지 않기 위해 공소기각 판결로 유죄판결 효력을 제거했다.
에이드리언 판사는 "근본 문제는 아이들을 책임있게 통솔하지 않은 부모와 지도교사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들이 졸업파티 뒷풀이 장소에 술 반입을 허용했고, 여학생들이 속옷 차림으로 수영장에 뛰어들어 노는 것을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아니타 로드리게스 검사는 "40년 검사 경력에 이 같은 판결은 처음 본다"며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피해자 본은 신원을 공개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당시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나섰다.
지역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들도 "에이드리언 판사의 발언과 판결은 성차별적이며, 매우 위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클린턴의 변호인은 "검찰은 피해자 진술 외에 혐의를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에이드리언 판사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한편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와 '더선'은 미국 형사법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검찰은 클린턴을 같은 혐의로 다시 기소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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