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사법부 독립 침해' 폴란드에 950억원 벌금 예고
법관 인선 정권 개입…정권 도전 판사징계로 재판 통제
법치주의 파괴 폴란드 법적제재 본격화…보조금 삭감도 가능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폴란드의 극우파 정권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정책을 펴는 데 대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가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판사징계 제도를 철폐하지 않으면 수주 내에 7천만 유로(약 95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복수의 EU 집행위 소식통이 밝혔다.
EU 집행위는 지난달 폴란드 정부에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적인 제재 절차에 돌입할 것을 경고하는 '공식적인 주의'를 통보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EU 집행위 대변인은 폴란드 정부가 답변을 보내왔다고 밝히고 EU가 이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라 요우로바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폴란드의 법치주의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판사에 대한 통제가 계속돼 유감이다. 우리는 법치주의 수호와 사법부 독립을 위한 임무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의 답변이 EU의 요구를 충족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면 EU는 즉각 벌금 부과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앞서 유럽사법재판소(ECJ)는 폴란드에 대해 사법부 통제를 위한 기구를 폐지하지 않으면 하루에 100만 유로(약 13억5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폴란드 정부는 EU 측의 이 같은 결정이 주권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 법치주의를 둘러싼 EU와 폴란드 간 분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폴란드의 집권 법과 정의당(PiS)은 2017년 대법원 산하에 판사징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정권에 도전하는 판사에 대해 정직 등의 징계를 결정했다.
또한 2018년에는 하원이 법관을 인선하는 위원회의 위원을 지명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이렇게 되면 여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을 터주는 셈이어서 EU가 회원국에 요구하는 사법부 독립과 법치주의,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폴란드 법관협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판사 6명이 정직됐고 1천명 이상이 사실상 집권 여당에 의해 선임됐다.
ECJ가 폴란드 정부의 이 정책이 EU법을 위반했다면서 제동을 걸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해 7월 ECJ 결정과 폴란드 헌법 중 어느 것이 상위법인지를 가린다며 폴란드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폴란드 헌재는 지난해 10월 EU의 조약이나 결정보다 폴란드 헌법이 우선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EU 집행위는 "EU법은 헌법을 포함, 개별 회원국의 모든 법보다 상위법"이라며 "ECJ의 모든 결정이 개별 국가의 사법부에 효력을 미친다"고 적시하면서 공식적인 법적 제재를 예고했다.
폴란드가 EU 측이 부과한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폴란드에 배정된 EU의 보조금을 벌금액만큼 삭감할 수 있다.
폴란드는 지난 2020년 EU의 순보조금으로 125억 유로(약 17조3천억원)를 받아갔다. 폴란드는 EU 27개 회원국 중 최대 보조금 수혜국이다.
폴란드는 2004년 EU에 가입하면서 EU 조약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EU의 경제·정치적 통합을 지지한다고 약속했지만 극우 정당이 집권하면서 EU와 대립각을 세웠다.
극우 성향의 법과 정의당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데 이어 2019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레흐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쌍둥이 형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이 정당은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가치보다는 보수 가톨릭과 전통적 가치에 기반한 사회로 '개혁'한다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책을 편다.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 대표는 자신이 총리에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사실상 내각과 국정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songb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