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 구금 호주 호텔, 알고 보니 난민 수용시설?

입력 2022-01-09 10:34
조코비치 구금 호주 호텔, 알고 보니 난민 수용시설?

망명 신청자 약 30명 억류 추정…불이 나도 밖으로 못 나가

"난민 갇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충격적"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인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가 비자 문제로 호주 멜버른 외곽의 한 호텔에 구금되면서 이 호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시설이었던 이 호텔이 현재는 난민 신청자를 수용하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인권 침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앞서 조코비치는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지난 5일 밤 호주 멜버른 국제공항에 도착했으나 비자 문제로 입국을 거부당하면서 현재 이 호텔에서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이 호텔 밖에는 조코비치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세르비아계 호주인과 백신 반대 운동가들 외에도 '난민 환영', '9년은 너무 길다'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도 등장했다.

'9년은 너무 길다'고 적힌 팻말은 9년간 호주의 난민정책에 시달린 24살의 이란 청년 메디 알리의 이야기다.

현재 이 호텔에 갇혀있는 알리는 고국에서 소수민족 출신으로 받은 박해를 피해 2013년 보트를 타고 호주로 떠났다가 당국에 걸리면서 9년간 구금시설을 전전했다.

이 호텔은 호주연방국경부(ABF)가 2020년 12월부터 난민 수용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망명 신청자 약 30명이 호텔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가 아닌 다른 사유로는 호텔을 벗어날 수 없고 언제까지 호텔에 있어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조건도 열악하다.

방 안 창문은 나사로 고정돼있어 바깥공기를 마실 수 없고, 음식에는 곰팡이가 피고 구더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초에는 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로비에 갇혀있으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됐다.



해당 호텔은 호주의 난민 구금정책의 단면에 불과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현재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은 나우루, 파푸아뉴기니 등 인근 섬나라에 있는 호주 역외 난민수용소에 있다가 치료를 받을 목적으로 호주로 이송된 후 호텔에 억류됐다.

앞서 이들이 거쳤던 수용소도 열악한 환경과 인권유린 논란 등이 터지면서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인권운동가들은 이번 조코비치의 억류 논란이 그간 도마 위에 올랐던 호주의 난민 정책을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조코비치가 방 안에서 나온 벌레와 형편없는 음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가족들과 세르비아 정부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호텔에 관심이 쏠렸다.

이날 시위 현장에 있던 한 50대 시민은 NYT에 "이 길을 수천 번 지나왔지만, 여기에 난민들이 갇혀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호텔의 망명 신청자들을 대리하는 인권변호사 앨리슨 바티손은 "호주 당국의 구금 시스템은 의도적으로 끔찍한 환경을 만들어 신청자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주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이민구금시설에 있는 망명 신청자는 1천459명으로 이 중 5년 이상 구금된 사람은 117명에 달한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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