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오페라 감독 이탈리아서 구금 논란…"러시아가 요구"

입력 2022-01-05 16:24
우크라 오페라 감독 이탈리아서 구금 논란…"러시아가 요구"

지인들 "정치적 박해…2014년 우크라 침공 항의에 대한 보복"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관측 속에 양국 간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유명 우크라이나 오페라 감독이 러시아의 요청으로 이탈리아에서 구금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예브게니 라브렌추크(39)는 지난달 17일 이탈리아에서 체포돼 구금된 상태다.

이 같은 소식은 그의 가족이 이같은 내용을 공개하는 데 동의함에 따라 지난 3일에야 뒤늦게 알려졌다.

나폴리의 한 사법 소식통은 그가 모스크바의 타간스키 법원이 발부한 국제 체포영장에 따라 나폴리 카포니티노 국제공항 인근의 한 호텔에서 체포됐다고 전했다.

그는 항공편으로 이스라엘에서 출발해 고국인 우크라이나로 가려고 나폴리를 경유하다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러시아 국영 통신사 타스는 그가 작년 7월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사기 행위로 궐석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모스크바의 폴란드극장 예술감독 시절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에게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나폴리 항소법원 루이지 리엘로 검사장은 "그에 대한 혐의의 세부 내용 전부를 갖고 있지는 않다"며 "이탈리아 법무부는 러시아 당국에 그가 체포됐다는 사실을 알렸고, 러시아 측은 40일 안으로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리엘로 검사장은 라브렌추크가 지난달 20일 비공개 심리에 참석했으며, 그 자리에서 러시아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신변 보호를 신청했다고 덧붙였다.

라브렌추크의 지인들은 러시아의 조치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발하며 그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지인 등 900명이 함께 계정을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는 "이번 사건은 조작된 것이며,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라브렌추크가 이에 항의하며 러시아를 떠난 것에 대한 정치적인 박해"라고 주장했다.

2003년 러시아 명문 국립공연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던 라브렌추크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우크라 동부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들을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를 침공하자 이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이후 2018년부터 작년 3월까지 흑해의 항구도시인 오데사 국립오페라발레극장의 총감독으로 일했으나 극장 직원과 마찰을 빚고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우크라이나 외교부 역시 라브렌추크가 나폴리에서 구금된 상태라고 확인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뒤 석연치 않은 테러 혐의로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난 크림반도 출신의 우크라 영화 제작자 올레그 센초프도 라브렌추크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다시 한번 침략국(러시아)이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애국적인 우크라이나인을 탄압하려 한다"며 "신참 정치범 라브렌추크를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크렘린이 또 다른 인질을 잡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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