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의 사우디 비판에 레바논 정부 긴장…"공식 입장 아냐"

입력 2022-01-04 18:32
헤즈볼라의 사우디 비판에 레바논 정부 긴장…"공식 입장 아냐"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전직 장관의 설화(舌禍)로 걸프 지역 아랍국가들과 외교관계 단절을 경험한 레바논이 이번에는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사우디아라비아 비판 발언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레바논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헤즈볼라의 주장이 자칫 레바논 정부의 입장으로 오인돼 걸프지역 아랍국가와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전날 헤즈볼라 지도자인 사예드 하산 나스랄라의 사우디 국왕 비판이 정부의 공식 입장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미카티 총리는 "사우디에 관한 나스랄라의 발언은 레바논 정부는 물론 레바논 다수를 대표한 것이 아니다. 아랍국가 특히 걸프 지역 아랍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레바논의 관심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제발 레바논과 레바논 국민에 대한 자비심을 갖고 종파와 정치에 편승한 증오의 수사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앞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는 사우디 국왕이 테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스랄라는 "(사우디) 국왕, 다에시(Daesh·IS의 아랍어 약칭)의 이데올로기를 세계에 수출하는 사람이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이는 헤즈볼라가 예멘 반군 후티를 지원한다는 사우디의 비판에 대한 대응이다.



하지만 사우디를 겨냥한 전직 정보부 장관의 발언으로 사실상 단절된 걸프 지역 아랍국가와의 외교 관계 복원을 바라는 레바논 정부 입장에서 나스랄라의 발언은 사태를 더욱 악화할 수 있는 요인이다.

앞서 조르주 코르하디 전 레바논 정보장관은 지난해 10월 방영된 인터뷰에서 "사우디 주도 연합군으로 인해 예멘인들의 터전이 파괴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후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은 레바논과 외교 관계를 사실상 단절하고, 레바논산 물품 수입도 전면 금지했다.

이로 인해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어온 레바논의 상황은 더욱 악화했고, 코르하디는 논란 끝에 장관직을 내놓았다.

예멘 내전에서 이란의 대리인 격인 후티 반군과 싸우는 사우디는 레바논 정부 내 헤즈볼라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장기 내전(1975∼1990년) 후 주요 정파 간 권력분점 합의에 따라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치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미카티 총리가 이끄는 현 내각에도 다수의 장관을 입각시켰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