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대법원, 자국내 저명 인권단체 '메모리알' 해산 판결(종합)
30여년 정치탄압 연구·인권 감시…당국은 '외국대행기관' 딱지
단체 "공정하지 않은 판결, 상소할 것"…국제기구들도 우려 표명
(모스크바·서울=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차병섭 기자 = 러시아 대법원이 28일(현지시간) 자국 내 대표적 인권단체인 '메모리알'에 대해 해산 판결을 내렸다.
타스·AFP 통신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앞서 검찰이 제기한 메모리알 해산 청구 소송 공판에서 "검찰의 요청을 수용해 국제 역사-교육·자선·인권 단체인 메모리알과 이 단체의 지방 조직 및 관련 산하 조직들을 해산하도록 결정한다"고 밝혔다. 판결 근거에 대해선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은 "메모리알이 자체 출판물에 외국대행기관임을 표시하도록 한 법률을 무시하면서 불법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또 "메모리알이 옛 소련에 대해 테러국가라는 허위 이미지를 조장하고,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왜곡하며, 나치 범죄자들을 복권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검찰 주장이 근거가 없다며 반박했다.
변호인 측은 판결이 나온 뒤에도 "검찰의 메모리알 해산 요청을 수용한 대법원 판결은 불법적이고 근거가 없다"면서 "상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모리알 운영의장 얀 라친스키는 "법원 판결은 국가에 해를 끼치는 공정하지 않은 결정"이라면서 "이는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나쁜 신호"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먼저 국내 법원에 상소하고, 필요하면 장기적으론 유럽인권법원에도 호소할 것"이라면서 "우선은 헌법재판소에 상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판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약 20개국 외교관들도 방청했다.
재판에 앞서 메모리알을 지지하기 위해 대법원 청사로 몰려온 약 100명의 시민은 "수치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판결에 항의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도 이날 성명을 통해 "메모리알 폐쇄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 침해"라면서 "단체 해산을 위한 정부의 외국대행기관법 이용은 국가적 탄압에 대한 기억삭제를 겨냥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장이자 스웨덴 외무장관인 안 린데도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중요한 출처를 잃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메모리알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저명 인권단체 가운데 하나다.
이 단체는 옛 소련과 개방 후 러시아의 정치적 탄압을 연구·기록하고, 러시아와 다른 옛 소련권 국가들의 인권상황을 감시해왔다.
메모리알은 옛 소련 시절인 1989년 역사-교육 단체로 창설된 뒤, 1991년 인권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옛 소련권인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조지아(그루지야)뿐 아니라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에도 지부를 두고 있다.
러시아 대검찰청은 앞서 지난달 메모리알이 '외국대행기관법' 등을 지속해서 위반했다며 이 단체의 해산을 요구하는 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했다.
이와 별도로 모스크바 검찰청은 모스크바 시법원에 메모리알 하부 조직인 '인권센터 메모리알' 해산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2년 채택된 러시아의 외국대행기관법은 외국의 자금지원을 받아 러시아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 언론매체, 개인, 비등록 사회단체 등에 자신의 지위를 법무부에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활동 자금 명세 등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자체 발행하는 모든 간행물에는 외국대행기관임을 명시해야 한다.
일각에선 '외국대행기관'이란 명칭 자체가 '외국 스파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활동에도 여러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해당 법이 NGO나 야권 단체 등의 정부 비판이나 인권보호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6년 외국대행기관으로 등록된 메모리알은 최근 몇 년 동안 외국대행기관법 위반죄로 여러 차례 과징금 처벌을 받았다.
cjyou@yna.co.kr,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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