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4시간 기자회견서 "위협당하는 건 러시아" 격앙

입력 2021-12-24 12:37
푸틴, 4시간 기자회견서 "위협당하는 건 러시아" 격앙

우크라 침공 질문에 "서방이 먼저 안보 보장해야" 반박

"유럽, 가스 사태 자초" 주장…서방 "러, 긴장 완화조치" 촉구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연례 기자회견에서 서방을 향한 불만과 공세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서방이 오히려 안보상 위협의 원인이라는 기존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약 4시간 동안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다소 격앙된 말투로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병력을 집결한 것은 자국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고, 유럽의 가스 위기와 러시아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년 초 제네바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안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면서 '출구'도 열어뒀다.



◇ "당신들이 러시아를 침공 않겠다고 보장해라, 헛소리 말고"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서방 국가들의 안보 위협을 받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병력 약 10만 명을 집결시키는 등 침공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서방의 의혹 제기를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는 영국 스카이뉴스 방송 기자의 물음에 "당신네가 러시아를 침략하지 않겠다고 당장 보장해줘야 한다. 수십 년째 헛소리만 하지 말고"라고 되받아쳤다.

이어 "우리가 미국에 국경을 맞댄 캐나다, 멕시코에 무기를 갖다 두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고 반문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데 대해 "우리가 미국 국경에다 미사일이라도 갖다 놨나. 아니, 미국이 미사일을 우리 집 앞으로 가져왔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의) 집 문지방을 밟고 서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 근처에 공격무기를 두지 못하게 하는 게 무슨 과도한 요구라도 되느냐"고 따졌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저들은 이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고 한다"며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반러시아 국가로 만들면서 현대식 무기를 강화하고 국민을 세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토가 동쪽으로 영역 확장을 하지 않겠다던 1990년대의 약속을 어겼다고 강조하면서 "사기당했다. 아주 뻔뻔스럽게 속였다"며 "우리는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나토의 동진을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 "베이징올림픽 보이콧은 '중국 성장 저해'가 목적"

로이터통신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 문제가 언급되자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신뢰 관계에 대해 찬사를 늘어놨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핵에너지, 첨단기술, 최첨단 무기 개발 등 분야에서 중국과 맺은 각종 협력 관계를 언급했다.

그는 "중국군은 최첨단 무기 체계로 중무장했다. 러시아는 중국과 첨단 개인화기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항공기·헬리콥터 등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협력 중"이라고 말했다.

2060년 이후 양국이 모두 '탄소 중립'을 달성한 이후에는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중국에 공급할 수도 있다고 푸틴 대통령은 밝혔다.

미국, 영국 등이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데 대해서는 "중국의 성장을 저해하려는 목적"이라며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외교적, 정치적 보이콧은.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것 말고는 다른 동기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발전을 저지할 수는 없다. 중국의 경제는 구매력 면에서 이미 미국을 앞섰다"며 "중국은 필연적으로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유럽, 가스 사태 자초…스스로 해결하라"

푸틴 대통령은 유럽의 천연가스 부족 사태에 대해서 "러시아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그는 "자초한 문제는 직접 해결해야 한다"며 "우리는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가스 생산국으로 유럽연합(EU) 가스 수요의 40% 정도를 공급하는데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1일부터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자원을 '무기화'한다는 의심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야말-유럽 가스관의 공급이 중단에 대해 "가스를 사겠다는 주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가스프롬이 가스 공급을 일부러 조절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으려는 시도"라고 반격했다.

특히 EU가 장기 계약으로 저렴하게 구매한 가스를, 수익성이 좋은 현물 시장에서 팔아치우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유럽의 가스 부족 사태는 독일이 러시아에서 공급받은 가스를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에서 재판매함으로써 더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가스를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로 보낼 게 아니라, 유럽과 독일로 보내야 한다. 그러면 현물 시장 가격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우크라이나 위협 계속하면 미·NATO의 쓴맛 볼 것"

안보상 '피해자'를 자처한 러시아를 향해 서방에선 비판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미 고위 당국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의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가 현재 진행 중인 일을 계속한다면 미국과 동맹은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조처를 준비하고 있고. 러시아의 희망과는 반대로 러시아와 더 가까운 곳에서 나토의 더 큰 능력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젭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러시아가 유럽의 안보 상황을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해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DPA통신과 인터뷰에서 나토는 확장하지 않기로 약속한 적이 없다며 이에 대해서는 내년 1월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더라도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탱크와 드론으로 무장한 병력 증강을 지속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가 공격자라는 것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도 "러시아의 어떤 침공도 엄청난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이익과 경제에 막대한 비용이 부과되도록 동맹과 함께 공동 제재에 나서는 등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러스 장관은 "러시아가 현재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를 통하는 것뿐이며 러시아가 1월에 대화를 시작할 의향이 있다는 신호를 보낸 사실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 외무부는 이날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군과 친러 분리주의 반군 모두에 휴전을 존중하고 국경개방과 포로교환 등 인도주의적 분야에서 추가적인 조처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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