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압박에 발톱 드러낸 러시아…가스 밸브 틀어쥐고 맞대응

입력 2021-12-22 11:45
수정 2021-12-22 14:53
서방 압박에 발톱 드러낸 러시아…가스 밸브 틀어쥐고 맞대응

러, 美에 나토 동진 막을 법적 보장 거듭 요구

미국, 강력한 경제제재 경고…나토 동맹국 군사 지원 강화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미국, 유럽 등 서방과 러시아의 긴장이 전방위로 고조하면서 자칫 군사적 충돌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과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에 맞서 유럽행 가스관의 밸브를 쥔 러시아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멀리는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개입했다고 보는 미국의 확신, 크림반도 사태로 가열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 최근 유럽을 겨냥한 친러국가 벨라루스의 '난민 공격'으로 양측의 관계는 한껏 불편해진 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서방이 나토의 동진(東進)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 등 비우호적 행동을 계속하면 상응하는 군사적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나토의 러시아 국경 인근 접근과 관련, 미국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보 보장을 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그는 "무력 충돌과 유혈은 절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들을 정치·외교적 수단으로 해결하길 원한다"라면서도 "최소한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명확히 규정된 법적 보장을 원한다"고 압박했다.

또 "우리는 러시아 인근으로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이 전개되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며 "루마니아에 이미 배치됐고 폴란드에도 배치될 예정인 (미국의 유럽 MD 시스템에 속한) 발사대 MK-41은 토마호크 공격미사일 발사를 위해 변형됐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경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으로 약 10만 병력과 무기를 배치하고, 내년 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고 준비한다는 정보 보고가 미국과 우크라이나 측에서 잇따라 제기되면서 러시아와 서방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나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권 국가의 나토 가입 금지 등의 요구를 담은 미·러간 안전보장 조약 초안과 러시아·나토 회원국 간 안보보장 협정 초안을 지난 15일 미국 측에 전달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지난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회담에서도 나토의 동진과 타격용 공격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법적 보장을 강하게 요구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동맹인 유럽 국가에 대해 가스공급 차단 카드를 빼 들었다. 러시아에서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의 가스 공급이 21일 중단됐다.

러시아는 상업적 이유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유럽이 가장 우려하던 바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삼아 지정학적 압박에 대응하게 되면 당장 에너지가 필요한 유럽은 딱히 대응할 강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여파로 이날 유럽 내 가스 가격은 심리적 경계선인 1천㎥당 2천 달러선을 훌쩍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 가스 수요의 40% 정도를 공급하고 있으며, 야말-유럽 가스관은 러시아 가스의 유럽 수출을 위한 주요 수송로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제한되면 겨울 추위가 본격적으로 닥치게 될 유럽에선 천연가스 발전소가 멈춰 정전 사태가 일어날 수 있고 난방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럽행 가스 공급 중단과 푸틴 대통령의 '군사적 조치' 발언 직후 미국과 EU는 강력한 제재를 경고했다.

미국은 상황이 악화할 경우 러시아에 대해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의 수출통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 보도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는 이 매체에 러시아가 스마트폰, 항공기·자동차 부품 등 여러 분야의 물자를 수입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치가 러시아 소비자와 산업계, 고용 등에 중대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에 대한 언급은 회피하고 있으나 경제 제재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당시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2014년 제재는 특정 러시아 국영기업들이 미국 자본·기술시장 접근을 막아 중장기적 발전을 억제하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며 "지금은 러시아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엄청나고 즉각적인 방안들이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일 러시아와 가까운 라트비아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러시아가 침공을 결정하면 즉각 실행할 태세가 돼 있다는 걸 잘 안다. 우리는 모든 우발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는 동유럽 지역의 방위력을 기꺼이 강화할 것"이라면서 "아울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U 정상들도 16일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군사 공격도 엄청난 결과와 혹독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면서 여기에는 (미국과 영국 등) 동맹과 조율된 제재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응해 미국은 나토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 폴란드, 리투아니아, 헝가리 등 중유럽 9개국에 대한 군사력 증강을 약속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나토 동맹국으로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국가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시아 반군이 세력을 확장하고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려고 동유럽 지역 전력 증강을 추진해왔다.

나토와 러시아는 1990년대 옛 소련이 붕괴한 후 동유럽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동유럽의 러시아 접경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나토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먼저 약속을 깬 것으로 판단한다.

이에 나토는 2016년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과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에 나토군을 배치하기로 했다. 또한 나토 동맹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에 안보 위협이 발생하면 나토가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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