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통령 암살 용의자들 "진짜 책임자는 감옥 밖에 있어"

입력 2021-12-19 10:11
아이티 대통령 암살 용의자들 "진짜 책임자는 감옥 밖에 있어"

CNN, 교도소 인터뷰…"가혹 행위 및 조서 날조" 결백 주장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지난 7월 발생한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일부 용의자가 교도소 내 가혹행위를 호소하면서 "이 일에 진짜 책임 있는 사람들은 밖에 있다"고 주장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은 최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소재 교도소를 방문해 콜롬비아 국적 용의자 5명을 인터뷰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CNN은 몇 달간 협상 끝에 당국으로부터 교도소 방문을 승인받았고, 취재진의 방문을 예상치 못했던 용의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콜롬비아 군인 출신인 이들은 인터뷰에서 암살 한 달 전 아이티에 입국했으며, 한 업체에 민간 경비요원으로 고용돼 아이티 대통령 후보 경호 임무를 맡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티 당국 조사에 따르면 암살 사건 당시 콜롬비아인 26명과 아이티계 미국인 2명이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사저에 침입해 총격을 가했다.

용의자들은 암살 후 한 건물로 몸을 숨겼다가 아이티 주재 대만 대사관에 진입했지만, 이후 아이티 당국에 자수했다.

CNN은 암살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배후인지, 용의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용의자들은 암살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과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우려해 말할 수 없다며 내막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이들은 대신 구금 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와 조서 날조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이티 경찰이 권총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 지속해서 잔혹하게 구타했고, 가족들 사진을 보여주며 위협해 외국어로 작성돼 읽을 수 없는 조서에 내용도 모른 채 서명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교도소 환경이 열악해 10kg 넘게 체중이 감소하는 등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혔다.

한 용의자는 "이번 일에 진짜 책임 있는 사람들은 감옥 밖에 있는데 우리는 여기 갇혀있다"면서 "우리는 속았다.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또 한 용의자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바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의자들은 자신들이 기소 없이 장기간 구금된 법적 근거를 모르겠다면서 "여기에는 법치나 적법 절차도 없다. 모든 사람은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결백하며, 우리는 법률대리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무죄 추정을 강조하면서 "국제 재판소에 이 사건을 회부하는 게 최선이다. 아이티를 빠져나가면 세상에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이티 정부 대변인은 고문 여부에 대한 CNN 질의와 관련, 취재진의 교도소 방문 승인을 언급하며 "숨길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조서 날조 여부에 대해서는 통역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모이즈 대통령이 피살 전 아이티 정치인·기업인들의 마약 밀매 연루 혐의를 조사해 미국에 넘기려 했다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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