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압력 이겨낸 교과서 주목…일본 정부 허 찌르기도
"강제되거나 속아서 연행·식민지에서 무리하게 동원"…가해 역사 기록
"정부 '강제연행 부적절' 결정했지만 실질적 강제연행 많았다" 지적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역사 교육 우경화를 조장하는 가운데 일제의 가해 행위를 비교적 제대로 전달하는 일본 출판사들의 교과서가 눈길을 끈다.
2022학년도(2022년 4월∼2023년 3월) 고교 역사총합(總合·종합) 교과서 수요 조사에서 선두를 달린 야마카와 출판의 교과서는 학계의 연구 결과를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해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서술했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관해 "강제되거나 속아서 연행된 예도 있다"고 적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야마카와는 "중국의 점령지나 조선으로부터의 노동자 강제 징용, 조선이나 대만에서의 징병제 시행 등 국민이나 식민지·점령지 사람들의 생활을 극한까지 바싹 깎아 군수물자의 증산이나 병력·노동력 보충·보강에 힘썼다"고 일제의 수탈을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일본의 광산이나 공장에서 노역한 이들에 관해서는 "식민지에서 억지로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명시해 강제성을 드러냈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본어 교육 철저 등 황민화 정책이 진행"됐다며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야마카와가 내놓은 역사총합 교재 3종이 이 과목 교과서 수요의 41.7%를 점했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나 노무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이런 흐름에 편승하지 않은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많이 선택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종군(從軍) 위안부'라는 표현에 군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는 이미지가 담겨 있다는 취지로 야당 국회의원이 질의하자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으므로 '종군 위안부' 또는 '이른바 종군 위안부'가 아닌 단순한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답변서를 올해 4월 각의(閣議) 결정하기도 했다.
노무 동원에 관해서는 "옛 국가총동원법 제4조 규정에 토대를 둔 국민징용령에 의해 징용된 한반도 노동자의 이입(移入·이동해 들어옴)에 대해서는, 이 법령에 의해 실시됐다는 것이 명확해지도록, '강제 연행' 또는 '연행'이 아닌 '징용'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했다.
일본 정부가 이런 답변서 결정을 계기로 사실상 압력을 가하면서 각 출판사가 '강제 연행'이나 '종군'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최근에 대거 수정했는데 저항을 모색한 출판사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이이치가쿠슈샤(第一學習社)는 "조선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탄광·광산이나 군수 공장에 강제 연행되거나"라고 쓴 부분이 문제가 되자 할 수 없이 교과서를 수정했으나 일본 정부의 허를 찌르는 방식을 택했다.
강제 연행에 관해서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전시(戰時) 중 한반도에서 노동자가 온 경위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강제 연행'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각의 결정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 연행에 해당하는 사례도 많았다는 연구도 있다"고 주석을 붙였다.
일본 정부가 강제 연행을 부인하고 있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태도가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우회적으로 일본 정부를 비판한 셈이다.
역사 교과서 전문가인 다카시마 노부요시(高嶋伸欣) 류큐(琉球)대 명예교수는 역사 교과서 선택이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관련 기술을 기준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해석할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야마카와가 기존의 세계나사 일본사 분야에서 높은 점유율을 지닌 회사였으며 학교 교육 현장의 "종합적인 판단"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다카시마 명예교수는 "야마카와가 그 정도로 정치적 압력을 받았는데 위안부 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제대로 쓴 것은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지지받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이이치가쿠슈샤의 경우 "(채택) 부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일본 정부의 의표를 찔렀다"고 진단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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