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민투표서 차이잉원 정부 예상 밖 승리(종합)
美 돼지고기 수입금지·원전 발전 개시 등 4개 안건 모두 부결
중국 벗어나 미국과 관계 강화 위한 '대승적 양보' 지지
미중 전략경쟁 최전선 양안갈등 깊어질 듯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8일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거는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정부와 여당이 승리했다.
국민투표 직전까지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극적으로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대만 정부가 '4개 부동의'(四個不同意) 목표를 관철함에 따라 거세지는 중국의 압박에 맞서 미국과의 관계를 전방위적으로 발전시켜나가려는 차이 총통의 정책 방향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 중 하나인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갈등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의 실시간 개표 현황에 따르면 1만7천479곳의 투표소에서 모두 개표 작업이 완료된 가운데 ▲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 ▲ 타오위안(桃園)의 조초(藻礁·산호의 한 종류)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도입 시설 이전 ▲ 국민투표일을 대선일과 연계 등 이날 국민투표에 부쳐진 4가지 안건이 모두 반대표가 더 많아 부결됐다.
안건에 따라 투표율이 41.08∼41.09%를 기록한 가운데 가장 쟁점이 된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안건의 경우 반대가 413만1천여표로 찬성의 393만6천여표보다 20만표 가까이 앞섰고 제4원전 발전 개시 안건은 반대가 찬성보다 45만여표 많아 반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최근 대만 여러 기관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4개 안건 모두 찬성 쪽이 우세한 상황이었기에 이번 결과는 대만 정부·여당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평가된다.
4개 안건이 모두 민진당 정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어서 이번 국민투표는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
이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안건은 가축 성장 촉진제인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와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 두 가지였다.
차이잉원 정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통해 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작년 12월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이 포함된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대만의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 금지가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목하며 압력을 가해왔다.
차이잉원 정부의 수입 허용 결단 이후 미국과 대만은 FTA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재개했다.
대만 내 강력한 반발에도 대만 정부가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을 결정힌 것은 경제 협력 강화 차원을 넘어 중국의 군사적 압력 속에서 안보를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미국과의 전방위 관계 강화를 위한 큰 틀의 양보 성격도 강했다.
따라서 야당인 국민당이 휘발성이 강한 '국민 건강 위협' 프레임을 씌우며 총공세를 펼쳤음에도 다수 대만인이 결국 국민투표를 통해 차이잉원 정부의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 결정을 '대승적 양보' 차원으로 이해하고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차이 총통은 전날 밤 총통부 앞 거리에서 진행된 대규모 유세에서 미국 돼지고기 수입 문제를 '가장 도전적 의제'로 규정하면서 이 문제가 '식품 안전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이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와 관련된 '경제·통상 문제'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대만은 반도체와 전자 산업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전통 산업은 여전히 관세·비관세 장벽에 부딪힌 탓에 반드시 양자 또는 역내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제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함께 대만 방어선을 지키고 함께 대만을 세계로 나가게 하자"고 강조했다.
차이잉원 정부의 탈원전 정책 무력화를 겨냥한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 안건도 부결되면서 대만의 탈월전 정책도 변함없이 유지되게 됐다.
대만 4원전은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여파로 거의 완공된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돼 봉인된 상태다.
대만에는 1∼4원전이 있는데 이 중 제4원전을 제외한 나머지 원전들은 노후화해 이미 가동을 중단했거나 곧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4개 부동의'를 내세운 정부·여당이 '4대 동의'를 내세워 강력한 정치 공세를 펼친 국민당에 사실상 완승함에 따라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물론 2024년 총통·국회의원 동시 선거 지형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차이잉원 총통은 이날 밤 직접 발표한 담화에서 "국민투표는 누가 지고 이기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미래를 어떻게 걸어가느냐의 문제"라며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 인민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국민당은 선관위의 공식 결과 발표 전에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했다.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주석은 이날 밤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 당내에서 '전범'(戰犯)을 찾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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