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스 주중 美대사, 악화일로 미중관계 '소통 파이프' 될까
중국 현지 매체, '청문회 강경발언' 경계 속 안정적 관리 기대
부임시기 주목…올림픽 개회식때 대사 자격으로 참석할지 관심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니컬러스 번스 신임 주중 미국 대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상원의 인준을 받음에 따라 미국과 갈등이 고조한 중국 내에서 그의 역할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노련한 직업 외교관 출신인 번스 대사가 양국 관계의 신뢰할 만한 소통로 역할을 하게 될지, 아니면 바이든 행정부 대 중국 압박 정책의 전령 역할에 충실할지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중국 현지에서 감지된다.
7월말 친강(秦剛) 주미 중국대사가 부임한 데 이어 그 다음달 번스 대사가 지명됐지만 인준 절차가 길어지면서 주중 미국대사 공백기는 14개월로 늘어났고, 양국 대치의 범위와 강도는 갈수록 확대됐다.
지난달 16일(한국시간) 미중 화상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후 미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결정과 신장(新疆) 인권 관련 연쇄 제재 등으로 양국 관계는 계속 파열음을 내고 있다.
번스 신임 대사는 부임지에서 환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임하게 된 셈이다.
이를 반영한 듯 중국 매체들도 그에 대해 경계 섞인 반응을 보였다.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8일자 사설에서 미국이 번스 대사를 '배웅'하면서 3발의 '포'를 쐈다고 썼다.
인준안이 통과된 날 미 재무부가 중국 과학기술 기업 9곳을 군수 기업으로 규정한 일, 상무부가 중국군사의학과학원 등 34개 단체를 수출 금지 명단에 올린 일, 미국 상원이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 법안을 통과시킨 일 등을 비꼰 것이다.
이 신문은 "미국에서 나오는 신호를 보면 번스 대사는 자신의 임무가 양국관계 개선이 아니라 중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가 10월 상원 청문회 때 신장 문제와 관련해 '제노사이드'(종족학살)라는 표현을 쓴 점,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확대를 언급한 점 등도 중국의 시선을 차갑게 만들었다.
양국 관계에 전환의 실마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사 개인의 역할에 기대치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대체적인 중국 내부 기류로 보인다.
그런데도 그가 '소통로'로 역할 할 것이라는 미묘한 기대도 공존한다.
지난달 11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장기 집권의 이념적 토대로 평가되는 역사결의가 채택된 뒤 중국은 시 주석 재연임 여부가 결정될 내년 하반기 20차 당대회때까지 경제, 대미외교 등 국정 핵심 사안에서 '안정 최우선' 기조를 견지할 것이라는 신호를 내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연쇄 압박에 중국이 비교적 절제된 대응을 하는 점, 미국 토네이도 피해에 대해 시 주석이 위로전을 보낸 일 등은 중국이 최소한 내년 당대회 전까지는 미중관계를 적절히 관리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직업 외교관 출신에 '바이든 외교라인'의 내부자로 평가받는 번스 대사가 미중 간 소통로 역할을 하면서 이런 안정적 관리에 기여하길 바라는 의중이 중국 관영 매체나 전문가 예상 등에서 어렴풋이 감지된다.
또 대변인(국무부), 교수(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등으로 일한 경력이 말해주듯 활발한 소통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번스 대사 개인의 스타일도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신민만보에 따르면 푸단(復旦)대 국제문제연구소 우신보 소장은 "번스 대사는 앞으로 대사로서 양국의 교량 역할과 소통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대사 취임후 미중 간 접촉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환구시보 사설도 대체로 냉소적 논조였지만 마지막에는 "미국 국내에서 전문성이 있고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은 번스 대사가 중미관계의 개선을 촉진하고, 중국인이 환영하는 대사가 돼 중국에서 이력서의 한 단락을 성공적으로 쓰게 되길 희망한다"고 바랐다.
아울러 베이징 외교가는 그의 부임 시기에도 주목한다.
그가 신속히 베이징에 도착해 중국 방역 규정에 따른 3주 격리를 거친 뒤 내년 2월 4일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다면 미국도 양국관계의 '관리'에 신경쓰고 있음을 보이는 제스처가 될 수 있어서다.
미국이 베이징올림픽에 본국 고위 관리를 파견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고위직 출신 미국 대사가 개회식에 참석하면 중국에 최소한으로는 배려하는 그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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