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탈리아 '슈퍼 백신패스' 꺼내들자 접종소 북적

입력 2021-12-10 09:17
[르포] 이탈리아 '슈퍼 백신패스' 꺼내들자 접종소 북적

겨울철 확진자 다시 크게 늘자 사실상 백신 의무화

관광업 의존 큰 교민사회도 애태워…"다시 긴 터널"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9일(현지시간) 아침 이탈리아 로마 외곽 쇼핑몰 포르타 디 로마에 있는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 센터.

이른 시간인데도 접수창구 앞은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꽤 길었다. 60세 이상 고령층부터 20∼40대까지 청·장년층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접종센터의 한 직원은 "최근 추가접종(부스터샷) 희망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기 줄이 부쩍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 쇼핑몰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 백신 접종센터였다.

이탈리아 의료보건 싱크탱크인 짐베(GIMBE)재단에 따르면 지난주 부스터샷 접종자 수가 260만 명으로 전주 대비 52.6% 증가했다.

부스터샷 접종이 시작된 지난 9월 이후 이날 현재까지 전체 추가 접종자가 987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지난주 한주에 얼마나 사람이 몰렸는지 가늠할 수 있다.



접종센터가 최근 붐비게 된 것은 로마 현지에서는 백신 미접종자를 겨냥해 한층 엄격해진 당국의 방역 규제가 직접적인 이유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달 6일부터 이른바 '슈퍼 그린패스'(면역증명서·백신패스)라는 제도가 시행됐다.

그동안은 백신을 맞지 않아도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만 확인되면 일상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슈퍼 그린패스는 백신을 맞았거나 바이러스 감염 후 회복해 항체를 보유한 사람에게만 발급된다.

이 증명서가 있어야 실내 음식점과 바, 영화관, 오페라 극장, 콘서트장, 나이트클럽, 축구경기장과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밀집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백신 대신 48시간 유효한 코로나19 검사를 통해 그린패스 혜택을 누려온 이들은 백신 접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 셈이다

일반 그린패스 역시 박물관·미술관·헬스클럽 등에 들어가거나 기차·비행기·고속버스 등 장거리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아직 유효하다. 민간·공공 부문 일터에서도 출근 도장을 찍으려면 그린패스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린 패스든, 슈퍼 그린 패스든 그 유효기간이 12개월에서 9개월로 확 줄어들면서 부스터샷은 더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부스터샷을 맞지 않고는 그린패스 갱신이 어렵고 그린패스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사실상 할 수 없다.

보건당국의 엄격해진 방역 규제는 로마 도심 풍경도 바꿔놨다.

이날 로마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인 스페인 계단 인근에는 시민도, 관광객도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걷다가 경찰관의 주의를 받고 부랴부랴 마스크를 찾아 쓰는 관광객도 종종 눈에 띄었다.

당국이 6일부터 로마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도심 쇼핑거리에선 야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부활한 것은 6개월 만이다.

유명한 '포토존'인 스페인 계단 앞 난파선 모양의 '바라카차 분수' 주변에는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졌다. 모여 앉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당국의 규제가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사회 전반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잔뜩 움츠린 분위기다.



작년 내내 코로나19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 이탈리아는 올해 광범위한 백신 캠페인과 엄격한 방역정책으로 서방권 국가 가운데서도 가장 안정된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달부터 다시 확진자 수가 서서히 증가하더니 지금은 재유행의 목전까지 왔다.

최근 며칠간 하루 확진자수는 1만5천 명 안팎으로 2천∼3천 명 선이던 10월 대비 최대 7배로 늘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일선 학교다. 그동안 잠잠하던 학교에서 최근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교육 당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확진자 연령대가 크게 낮아져 당국은 근심이 더 깊어졌다.

학교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6세 미만 유치원생 감염자도 늘어나고 있다.





당국은 해당 나이대 특성상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학급 전체를 열흘 간 자가 격리하도록 하지만 이런 대응책이 불러오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당장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는 애가 탄다.

여름과 가을 확진자가 줄고 해외여행 규제가 단계적으로 풀리면서 들뜬 분위기가 감돌던 현지 교민사회도 다시 엄혹한 시기를 직면했다.

대부분 관광업종에 종사하는 로마 교민들은 1년 넘게 일손을 놓고 있다가 지난봄부터 제한적으로나마 조금씩 일감이 들어온 덕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과 맞물려 한국에서 이달 초부터 다시 입국자 격리 제도가 부활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

관광가이드로 일하는 한 교민은 "기존 예약이 속속 취소되는 등 벌써 타격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한동안 다시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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