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늘었는데 매물 쌓이는 전세시장…1년 전 전세난과 딴 판(종합)
방학 이사철 실종 "찾는 사람 없다"…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 5만건 돌파
갱신 청구권 등 재계약 증가하고 신규 계약은 '동맥경화' 여파로 급감
2년 전보다 강남구 평균 4억원, 비강남도 1억∼2억 올려줘야…거주 이전 어려워져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최근 전세시장이 요상하다. 통계상 거래량은 늘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겨울방학 이사철 수요도 없이 거래가 안 되고 물건이 쌓인다고 아우성이다.
전셋값이 급등하고 물건이 없어 전세난에 시달렸던 1년 전 시장 상황과 완전 딴판이다.
전문가들은 계약갱신청구권 시행과 그로 인한 전셋값 폭등으로 갱신 계약은 늘어난 반면 신규 계약은 급감한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 통계는 늘었는데…현장은 "방학 이사철 실종, 물건 쌓여" 괴리
8일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전통적인 학군 수요지역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일대에 매매 거래는 물론이고 전세 수요도 예년보다 크게 급감했다.
중개업계는 당초 지난달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나면 방학 이사철 전세 수요가 움직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전세를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수능 이후 전세 거래가 다소 숨통이 트이긴 했으나 예년 수준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단지로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평소 단기 학원 수요도 많은데 올해는 방학 이사철을 실감할 정도의 수요 증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양천구 목동도 마찬가지다. 신시가지 3단지내 한 중개업소 대표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매매 거래도 안 되는데 전세까지 꽁꽁 얼어붙었다"며 "수능 이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전망했다.
신시가지 7단지 일대 중개업소 사장도 "목은초교 등 학군 수요가 많은 곳인데 이달 들어 지난달보다 문의가 조금 늘었다 뿐이지 예년에 비해 거래는 뜸하다"며 "1년 전엔 전셋값이 1억∼2억원씩 급등하고 전세를 못 구해 난리였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딴 판"이라고 전했다.
기대했던 학군 수요마저 사실상 실종되다시피 하면서 서울 아파트 시장에는 전월세 물건이 쌓이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은 한달 전 4만6천840건에서 최근 5만건을 돌파하며 현재 5만1천9건(8.9%)까지 증가했다.
마포구 아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두 달 전부터 전세물건이 적체되기 시작해 고점에서 1억원 가까이 떨어진 것도 있는데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수능만 끝나면 전세 수요가 늘 것으로 봤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거래가 안 된다"는 시장 분위기와 반대로 통계상 전월세 거래량은 가을 이사철이 시작된 10월 이후 증가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신고건수 기준)은 총 1만8천935건으로, 전월 대비 6.3% 증가했다.
작년 같은 달에 비해서는 7.7% 감소한 것이지만, 5년 평균 거래량에 비해선 7.1% 많은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아파트 10월 전월세 거래량은 총 1만4천226건으로, 작년 10월(1만6천715건)보다 2천여건 줄었지만, 올해 9월(1만2천266건)보다는 2천여건 증가했다.
11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는 현재까지 총 9천219건이 신고됐다. 전월세 통계는 세입자의 확정일자 신고에 의존해 실제 계약일부터 신고일까지 길게는 2∼3개월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앞으로 점점 더 증가할 전망이다.
◇ 전셋값 급등에 재계약 늘고 신규 거래는 '동맥경화'…매물 쌓이고 가격 낮춰도 안 나가
시장 상황과 통계 수치 간에 괴리를 보이는 원인은 전세 시장 전반에 걸쳐 신규 계약은 줄었는데, 갱신 계약은 늘어난 영향이 크다.
지난해 7월 말부터 '임대차 2법'이 시행되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는 사람이 늘었고, 갱신 청구권을 쓰지 않더라도 재계약을 하고 눌러앉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양천구 목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최근 계약서를 쓰는 전세 계약의 10건 중 9건은 재계약이고 그중에서도 갱신청구권을 쓰는 경우가 많다"며 "신규 계약은 씨가 말랐다"고 설명했다. 만기가 도래한 전세의 상당수가 재계약으로 이어지고, 신규 전세 이동은 '동맥경화' 상태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임대차 2법 시행 후의 전셋값 급등 현상이 있다.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지역간 이동이나, 평수를 늘리는 갈아타기 수요가 사라진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10월 기준 약 6억2천907만9천원으로, 임대차 2법 시행 전인 작년 7월(4억6천458만1천원) 대비 1년3개월 만에 35.4%(1억6억449만8천원)가 올랐다.
2년 전 평균 전셋값은 약 4억4천251만원으로, 2년 전 계약한 사람이 현재 새로 전세를 얻으려면 평균 1억8천657만원(42.2% 증가)을 더 줘야 한다.
강남구의 경우 10월 현재 평균 전셋값은 11억5천695만원으로, 임대차 2법 시행 전보다 평균 3억7천165만원, 2년 전보다 무려 4억1천467만원이 올랐다. 상승률로 각각 47.3%, 55.9%에 달하는 수치다.
송파구는 2년 전보다 전셋값이 3억1천만원 가까이 올라 상승률(57.5%)로는 서울 지역내 최고를 기록했다.
서민들이 많이 찾는 노원·도봉·강북구 등 일명 '노도강' 지역은 2년 전보다 전셋값을 평균 40% 이상, 1억∼1억3천만원가량 올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금천구(43.2%)와 관악구(41.7%)도 2년 전보다 평균 전셋값이 1억2천∼1억4천만원 뛰었다.
이런 와중에 최근 금융당국이 전월세 대출도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대출을 받아 전셋값을 올려주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자연스레 '재계약'으로 눌러앉는 것이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용 84㎡만 해도 강남권의 전셋값이 10억∼20억원을 넘는다"며 "웬만큼 열정적인 '맹모'가 아닌 이상 강남권에 전세 얹기는 엄두도 못 낼 수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마포구 아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2년 전보다 전셋값이 급등하다 보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못하게 된 세입자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라도 재계약을 하려고 한다"며 "묵시적 계약갱신이 이뤄진 경우도 갱신청구권을 우선해서 소진하는 것으로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신규 계약이 감소하면서 전셋값 상승세도 크게 둔화됐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9월 둘째 주 0.17%에서 지난주에는 0.10%로 줄었고 금천(0.03%)·관악(0.01%)·중랑(0.05%) 등은 보합 수준으로 상승폭이 축소됐다.
올해 6월부터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되면서 과거 공개되지 않고 '사각지대'에 있던 계약들이 공개되기 시작한 것도 통계상 거래량 증가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5월까지 전월세신고제 계도 기간을 거쳐 이후 과태료가 부과가 본격화하면 그간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그림자 거래'들이 공개되면서 실제 전월세 거래가 증가한 것 같은 '착시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올해 하반기 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이더라도 갱신청구권이 소멸되고 신규 계약이 본격화할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세입자들의 세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지난해와 올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내년 7월 말 이후부터 신규 계약을 맺어야 해 전셋값 상승에 따른 부담이 크게 다가올 것"이라며 "공급이 단기에 급증하지 않는 한 일단 한 번 오른 전셋값은 떨어지기 쉽지 않아서 지역에 따라 전세금 부담이 수억원씩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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