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일본침몰' 여파(?)…연쇄 지진에 일본열도 불안감 확산
장래 최악재난 예상지 후지산 부근·난카이해곡 지진대서 강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에서 3일 약 3시간 간격으로 잇따라 발생한 규모 5 안팎의 지진으로 열도 전체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빈발하는 지진에 익숙한 일본인들이지만 더 큰 지진의 전조일 가능성을 우려하게 하는 여러 환경적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6시 37분께 야마나시(山梨)현 동부 후지고코(富士五湖)를 진원(깊이 19㎞)으로 하는 규모 4.8(수정치)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어 3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전 9시 28분께 와카야마(和歌山)현과 도쿠시마(德島)현 사이 해협으로, 후지고코에서 500㎞가량 떨어진 기이스이도(紀伊水道)를 진원(깊이 18㎞)으로 하는 규모 5.4의 강진이 뒤따랐다.
두 지진에 의한 쓰나미는 발생하지 않았다.
유리창이 깨지거나 노후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일부 지역의 정전 사태가 빚어지는 등 경미한 물적 피해는 보고됐지만, 다행히 사상자가 나오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심각한 물적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 지진의 최대 세기는 일본 기상청 진도 기준으로 각각 5약으로 관측됐다.
진도 1에서 7까지인 총 9단계(5, 6은 약·강으로 세분)의 진도에서 중간에 위치한 5약은 대부분 사람이 두려워하고 물건을 붙잡아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실내에선 전등 줄이 격하게 흔들리고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가구는 넘어질 수 있고, 실외 상황으로는 창문 유리가 깨지거나 전봇대가 흔들리고 도로는 파손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은 통상 5약부터 강진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방재 태세가 잘 갖춰진 일본에서는 이 정도 지진에서도 안전 점검을 위해 신칸센이나 지하철 등 기간 교통 시스템 가동이 일시 정지되는 등의 차질이 빚어지지만 곧바로 일상을 회복하게 된다.
이번 두 차례의 강진에도 그런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이날 잇따른 두 지진은 일본인들에게 몇 가지 점에서 남다른 공포를 안겨줬다.
두 지진 중 시간상으로 앞선 후지고코 지진의 진원은 일본에서 최고봉이자 활화산인 후지산 정상에서 30~40㎞ 떨어진 후지산 자락이었고, 이는 후지산 분화의 전조가 아니냐는 공포감을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
후지산을 끼고 있는 야마나시현에서 진도 5약의 강진이 관측된 것은 2012년 1월이후 근 10년 만의 일이다.
2012년 당시에도 이날 지진이 일어났던 후지고코가 진원이었고, 당시 규모는 5.4였다.
후지고코를 진원으로 하는 지진이 갑자기 빈발하는 것도 불안을 키웠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진도 5약의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인 오전 2시 18분께 진도 4에 이어 다시 5분 만에 진도 3의 지진이 엄습했다.
일본에서 후지산 분화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직하지진, 일본 근해인 난카이(南海) 해곡 일대를 진원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론되는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과 더불어 미래에 닥칠 우려가 있는 최대 재난 중의 하나로 거론된다.
야마나시, 시즈오카, 가나가와 등 후지산을 둘러싼 3개 광역자치단체(현)로 구성된 '후지산 화산 방재대책 협의회'가 17년 만에 개정해 올 3월 내놓은 후지산 분화에 따른 피해 지도에 따르면, 후지산이 최대 규모로 분화할 경우 용암류가 27개 기초자치단체를 덮치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대규모 피해를 안길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일본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후지산 분화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고, 현지 언론도 연관성을 부인하는 전문가의 말을 전하고 있다.
요시모토 미쓰히로 후지산 화산 방재연구센터장은 NHK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지진의 진원 부근은 이즈(伊豆)반도가 걸친 바다 쪽 필리핀해 플레이트(판)와 육지 쪽 플레이트가 부딪치는 곳이고, 과거에도 반복해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라며 이번 지진이 후지산 활동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후지산 화산 활동이 활발해질 경우 정상 북동쪽 지하 10~20㎞에서 '심부 저주파 지진'으로 불리는 매우 작은 지진이 늘어난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이번 지진 발생을 전후로 관측 데이터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야마나시현 지진에 이어 2시간 51분 만에 발생한 와카야마현 지진은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TV 주말 드라마인 '일본침몰'을 연상시켜 공포감을 낳았다.
'일본침몰'은 일본 열도 전체가 플레이트가 꺼지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설정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 입장에선 이날 강진이 드라마 속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날 와카야마현에서 지진이 일어난 지점은 공교롭게도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 예상 범위에 속하는 곳이라고 한다.
일본 기상청은 와카야마현 지진에 대해 밑으로 파고드는 해양 플레이트 위에 놓인 육상 플레이트 내부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플레이트 경계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메커니즘이나 규모와 다른 점을 들어 이날 지진으로 거대지진 발생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야마오카 고슌 나고야(名古屋)대학 교수는 교도 통신 인터뷰에서 이날 두 지진의 진원이 500㎞ 이상 떨어져 있어 관련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며 공연한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SNS 공간에선 이날 새벽녘에 야마나시에서 진도 5약의 강진이 일어나고 그 뒤를 이어 와카야마에서도 같은 수준의 지진이 발생해 "무섭다"라거나 "왠지 예감이 안 좋다"며 불안을 호소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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