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탈레반 두번째 고위급 접촉…대사 일행과 인권문제 등 논의
약 한달만에 도하서 탈레반 외교장관 다시 만나
인도주의적 지원도 논의…탈레반, 동결자산 해제 필요 강조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재집권에 성공한 탈레반과 두 번째 고위급 접촉을 벌였다.
2일(현지 시간) 외교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최태호 주아프가니스탄 대사는 다른 나라 대사 일행과 함께 전날 오후 카타르 도하의 한 호텔에서 탈레반 대표단과 회동했다.
대사 일행은 한국, 미국,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16명으로 이뤄졌고, 탈레반 측에서는 아미르 칸 무타키 외교부 장관 대행이 대표로 나섰다.
한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 8월 아프간 전 정부 붕괴 후 탈레반 지도부와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최 대사는 약 한 달 전인 지난 10월 27일 현지 대사 일행과 함께 무타키 장관 대행과 처음 만난 바 있다.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할 때 탈출, 현재 도하에 임시 사무소를 마련한 상태다. 도하에는 탈레반의 대외 창구 격인 정치사무소가 있다.
한 외교 관계자는 "이번 회동은 약 3시간 동안 이어졌는데 지난번 회동과 비슷한 분위기 속에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사 일행은 아프간 내 여성에 대한 교육과 인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테러 대응, 인도적 지원 등에 관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무타키 장관 대행은 "집권 후 부정부패가 줄었고 치안도 안정됐으며 관세 등으로 인해 재정도 확충됐다"며 국정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동결된 자국 자산이 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산은 90억 달러(약 10조6천억원) 이상으로 이 중 70억 달러(약 8조3천억원)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아프간 중앙은행이 미국에 예치한 이 같은 자산을 동결했다.
현재 아프간은 공공 부문 경비의 75%가량을 맡아온 해외 원조마저 대부분 끊어지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중이다.
이번 만남과 관련해 탈레반 외교부 대변인인 압둘 카하르 발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양측은 안보, 인도주의, 경제, 정치, 보건 이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는 "IEA(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 탈레반의 국호)는 대사 일행에 치안과 구호 지원 협력을 약속했다"며 카불의 대사관 운영도 재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제사회 대부분은 탈레반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다. 아프간에서 대사관을 운영하는 나라도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등 소수에 불과하다.
탈레반은 재집권 후 여성 인권 존중, 포용적 정부 구성 등 여러 약속을 했지만 상당 부분은 아직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각국은 탈레반의 약속 준수 상황을 지켜보며 외교 관계 수립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 정부는 아프간 주민을 위해 3천200만달러(약 380억원)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이 지원은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유엔 기구를 통해 전달되며 식량 공급, 피난민 보호, 기초 보건 지원 등을 중심으로 집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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