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자체 '외국인도 주민투표권' 조례 추진…집권당 반발
외국인 노동력, 일본 사회 유지에 기여…체류 제한 완화 추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외국인에게 주민투표권을 부여하는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계획에 일본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손 부족이 심각해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고 있으나 집권 자민당은 이들에게 주민투표권을 주는 데에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도쿄도(東京都) 무사시노시(市)가 석 달 이상의 재류 자격을 지니고 관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최근 공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무사시노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같은 공동체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외국 국적의 분들도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면서 "시에 주민등록이 있는 외국 국적 분들의 투표 자격은 일본 국적 분들과 마찬가지"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조례안에 대해 시내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2천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3.2%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무사시노시는 주민투표 조례안을 최근 시의회에 제출했으며 다음 달 가결되면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에 실시될 전망이다.
조례안은 "시는 성립한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하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주민투표 결과에 법적인 구속력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조례안에 집권 자민당이 반발하고 있다.
29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나가시마 아키히사(長島昭久) 자민당 중의원 의원은 "참정권은 국민 고유의 권리다. 주민투표 결과는 시의 정치적 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면서 전날 무사시노시에서 조례안 철회를 요구하는 가두연설을 했다.
나가시마는 지난달 총선 때 무사시노시, 후추(府中)시, 고가네이(小金井)시로 구성된 도쿄18구에서 야당 후보에게 패배했으나 중복으로 출마한 비례대표로 당선돼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자민당 참의원 의원은 무사시노시의 조례안에 대해 "하려고 생각하면 15만명인 무사시노시(인구)의 절반을 넘는 8만명의 중국인을 일본 국내에서 (무사시노시로) 전입시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20일 트위터에 글을 썼다.
무사시노시의 행정당국과 의회가 중국인에게 좌우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셈이다.
자민당 외교부회장인 사토 의원은 도쿄올림픽 때 한국 대표팀이 별도의 급식 지원센터를 설치한 것에 대해 후쿠시마 주민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고 비난했으며 한국 법원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배상 판결에 맞서 강력히 대응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한 인물이다.
일본에서 외국인의 주민투표를 인정하는 조례가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사시노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작년 12월 기준 주민투표를 할 수 있는 상설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일본 전국에 78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 43개 지자체가 투표권자에 외국인을 포함하고 있었다.
최근 상황을 보면 외국인의 활동이 일본 사회의 기능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요식업, 숙박업, 사회복지시설, 농업 현장 등에서 외국인 인력 수요가 급증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해 외국인 노동력 유입이 급감하자 산업 현장에서 아우성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일손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재류 기간 제한을 사실상 없애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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