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대결] ③ 나라살림·조세체계 개선 다루는 '큰 그림' 공약 없어
특정 분야만 언급…국토보유세·종부세 개편, 지자체 반발·부작용 우려
'나랏빚 1천조원' 앞두고 "세입확충·세제합리화도 공론화해야"
(세종=연합뉴스) 차지연 곽민서 기자 =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세금 공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전면 재검토 등 현재까지 거론된 공약들은 주로 부동산과 관련된 내용인데,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상당하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제 활성화와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갈수록 가중될 재정 부담을 고려한 지출구조 개선이나 증세 등 핵심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28일 여야 후보들이 부동산 세금뿐 아니라 효율적인 나라 살림을 위한 전반적인 조세·재정 관련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국토보유세·종부세 개편안 등 대선공약 실현 가능성엔 물음표
이 후보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탄소세 도입과 윤 후보의 종부세 전면 재검토 등 지금껏 여야 후보들이 내놓은 세금 관련 공약은 아직 방향성 정도만 제시된 상태다.
이 때문에 세수 효과와 향후 재정에 미칠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다만 두 후보의 공약 모두 현실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다.
모든 토지에 세금을 매겨 마련한 재원으로 전 국민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구상은 종부세·재산세와의 이중과세 논란, 토지 용도를 고려하지 않은 일괄 과세에 따른 부작용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국토보유세 도입 시 종부세를 폐지하거나 종부세·재산세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공제해주는 방안도 거론되는데, 국세지만 전액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종부세와 지방세인 재산세의 세수가 줄어들 경우 지역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 요소인 토지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세금을 매길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염명배 충남대 교수는 "세금을 걷을 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세수만을 목적으로 걷을 경우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조세 회피 현상이 벌어지면 결국 부담은 국민이 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의 종부세 전면 재검토 구상대로 종부세와 재산세를 통합하거나 1주택자에 대해 종부세를 면제하는 방안도 마찬가지로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
현재 종부세수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적정한 비율로 배분되는데, 세금을 걷은 지역에서 해당 세수를 쓰는 지방세인 재산세와 종부세를 충분한 검토 없이 합치면 지자체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1주택자에 대한 면제도 세수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지자체 반발이 예상되며, 이미 각종 공제를 적용받는 1주택자에 대해서만 혜택을 늘리는 것은 조세 형평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불거질 전망이다.
김용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종부세와 재산세를 단순히 통합하겠다는 것은 현재의 세금 배분 체계에 대해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며 "1주택자 면제도 '똘똘한 1채' 현상만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재정 어려움 고려해 과감한 조세·재정정책 의견 피력해야"
현재 거론되는 공약의 허점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보다 더 많이 나오는 지적은 여야 후보 모두 나라 살림과 조세 체계 개선에 대한 '큰 그림'이 담긴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내년 사상 처음으로 1천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국가 예산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전년 대비 8∼9%씩 늘었다.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했던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끝나더라도 한국의 재정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에서 손꼽히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과 고령화 때문이다.
올해 전체 재정지출 중 46.1%였던 의무지출 비중은 2025년 49.6%로 늘어나는데, 세금을 내는 젊은 층이 줄어들고 복지 혜택을 받는 노년층이 늘어나고 있어 2026년 이후에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돈 나갈 곳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돈이 크게 늘지 않으면 적자는 피할 수 없다. 올해 90조3천억원이던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2025년에도 72조6천억원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재정적자를 50조원은 줄여야 하는 상황인데 지출을 삭감하거나 수입을 늘리는 방법밖에는 없다"며 "재정 어려움을 고려해 대선 후보들이 과감한 조세·재정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야 할 때인데 여야 후보 모두 명확한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재정이나 조세 전반에 대한 구상보다는 부동산 등 특정 분야에 관한 세금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
이 후보의 국토보유세나 탄소세는 증세에 해당하지만, 전체 재정 확대보다는 기본소득 재원이라는 한정적 역할을 하는 세금이고, 윤 후보의 종부세 개편안 역시 재정건전성 확보와는 거리가 먼 방안이다.
김 교수는 "우선 세입 확충을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출구조 개선 등을 통해 할 것인지, 증세나 세목 조정을 통해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세입 확충 여력이 큰 부가가치세나 개인소득세 개편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법인세 선진화와 자기자본 공제 제도 도입, 국제 조세 과세 원칙 전환, 유산취득세 도입 등 상속세 개편, 환경세 강화 등 세제 합리화 방안도 공론화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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