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하는 중남미 정치…변화 열망 속에 '아웃사이더' 부상
칠레 대선도 '극과 극' 아웃사이더 후보 맞대결
이념 넘어 '변화 요구·기득권에 대한 반발'이 선거 좌우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내달 19일(현지시간) 결선을 앞둔 칠레 대통령 선거는 1990년 민주화 이후 가장 양극화된 선거로 불린다.
군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옹호하는 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와 신자유주의 철폐를 외치는 30대 좌파 후보 가브리엘 보리치가 맞붙는다.
칠레는 중남미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꼽혔다.
피노체트 군부정권이 끝나고 민주주의를 되찾은 후 칠레에선 대체로 중도좌파가 집권했다. 최근엔 중도좌파 미첼 바첼레트 전 대통령과 중도우파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두 차례씩 번갈아 집권하며 균형을 맞췄다.
바첼레트 정권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건드리지 않았고, 피녜라 대통령은 최근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할 정도 두 정권 모두 양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내달 대선에서 카스트와 보리치 중 누가 당선되든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칠레 정치의 좌우 균형추가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선거 구도를 만든 것은 지난 2019년 불붙은 대규모 시위였다.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 인상이 촉발한 시위는 연금, 교육, 보건 등 사회 불균형을 야기하는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 요구로 이어졌고, 변화의 요구가 커졌다.
국민의 변화 요구가 양극단에 있는 '아웃사이더'들의 부상으로 이어진 것은 지난 몇 년 사이 중남미 다른 나라에서도 확인됐다.
최근 중남미의 주요 선거에서 좌파 후보의 상대적인 우세가 나타났는데 그보다 더 뚜렷하게 표출된 것은 이념을 떠난 '현 상황'에 대한 반발이나 변화를 향한 열망이었다.
정치권의 부패나 경제 위기, 높은 범죄율 등에 대한 분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더욱 커졌다.
지난 6월 페루 대선에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초등교사 출신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당선됐다.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 공산화 공포가 일어날 정도로 급진 좌파로 분류되는 후보였다.
페루는 생존 전직 대통령 대부분이 퇴임 전후로 부패 혐의를 받을 정도로 정치권의 부패가 심각한 상황이었고, 기성 정치권에 대한 염증으로 페루에서도 좌우 양극 후보의 박빙 맞대결이 펼쳐진 바 있다.
2019년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이념 성향은 다르지만 아웃사이더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린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기존 중도우파 정권의 부패와 경제위기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고, 부켈레 대통령도 범죄와 부패 척결을 약속하며 신선함을 어필했다.
아웃사이더 대통령의 출현은 정치 혼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임기 내내 퇴진 요구에 시달렸고,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는 부켈레 대통령도 최근 시민단체들을 압수수색하는 등 권위주의적 행보로 안팎의 우려를 받고 있다.
취임 4개월째인 카스티요 대통령은 연이은 장관 낙마에 이어 때이른 탄핵 위기에도 몰렸다.
내년 출범할 칠레 새 정부도 칠레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고, 그 과정에서 혼란도 수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첼레트 정권 등에서 장관을 지낸 세르히오 비타르는 24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불과 2년 만에 칠레에 이런 변화가 올지는 생각도 못했다. (카스트와 보리치) 두 갈래 길 모두 우리를 심연으로 이끌어 아르헨티나나 페루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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