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란 잘란] '오토바이 천국' 인니 조코위 대통령이 쓴 헬멧은

입력 2021-11-19 06:06
[잘란 잘란] '오토바이 천국' 인니 조코위 대통령이 쓴 헬멧은

등록 오토바이만 1.2억대…헬멧 시장 규모 세계 1위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이달 12일 롬복 섬에 개장한 국제 모터바이크 경기장을 오토바이를 몰고 달렸는데, 알고 보니 당시 착용한 'RSV' 브랜드 헬멧이 한인기업 제품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오토바이는 경찰에 등록된 숫자만 따져도 1억2천만대로, 그야말로 어디를 가든 '오토바이 천국'이다.

현지인들은 청소년 때부터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해 통학·출퇴근용으로 타는 것은 물론 온 가족이 오토바이 한 대로 나들이도 가고, 택배·음식 배달·손님 수송으로 생계 유지에 쓴다.

오토바이 1대당 최소 1∼2개의 헬멧을 구매하고 통상 1년 6개월 주기로 교체하기에 인도네시아의 헬멧 시장 규모는 세계 1위를 자랑한다.

조코위 대통령이 12일 착용한 헬멧은 현지 헬멧 시장 6위의 한인기업이 만든 60만 루피아(5만원)짜리 주력 상품으로 대통령 착용 후 주문이 급증했다고 한다.

지난 18일 연합뉴스 특파원이 찾아간 RSV 헬멧 생산기업 '헬민도 우타마'(PT.Helmindo utama)의 공장은 자카르타 외곽 땅그랑에 위치했다.

강영균(49) 대표는 2003년에 이곳에서 헬멧 생산을 시작해 현재는 250여명의 직원을 고용해 월 10만개의 헬멧을 생산하고 있으며 연간 매출은 1천500만 달러(177억원) 정도다.



이 업체는 가와사키, 야마하 등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헬멧을 공급하다가 5년 전부터 'RSV'라는 자체 브랜드 제품도 출시했다.

공장에 들어서니 사방에 검은색, 흰색,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의 헬멧이 눈에 들어왔다.

한 바퀴 돌면서 가장 놀란 점은 헬멧 제작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헬멧 외피(쉘)를 고강도 플라스틱(ABS)으로 만들어 내는 것부터 연마 후 도색을 하고, 그래픽을 입힌 뒤 안면 보호면과 턱 끈을 달고, 스티로폼 완충재와 내장재를 넣는 작업까지 모두 사람 손으로 한다.

강 대표는 "헬멧 생산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하이테크 산업은 아니지만,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일단 규격이 맞아야 한다. 가볍고, 통풍이 잘되며, 소음 차단까지 신경 쓸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중에서도 헬멧 생산의 핵심 공정으로 '그래픽' 부착 작업을 꼽았다.

여성 근로자들은 도색을 마친 헬멧 위에 판박이 스티커를 붙이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스티커에 물을 묻혀 헬멧 표면을 따라서 오차 없이 붙이고 있었다.

저렴한 헬멧은 그래픽 없이 단색으로 팔지만, 중고가 제품은 화려한 그래픽으로 고객의 눈길을 끈다.

그래픽 부착은 숙련된 작업자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문이 폭증하더라도 생산량을 갑자기 몇 배씩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강 대표는 "진출 초기에는 무조건 저렴한 제품이 팔렸는데, 현지인들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중고가 제품도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며 "요새는 날렵한 형태의 통풍구를 장착한 헬멧이 트렌드"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서민들이 주로 구매하는 헬멧은 30만 루피아(2만5천원) 이하 제품이다.

이들은 125㏄급 보급형 오토바이를 탄다.

RSV 브랜드는 150㏄ 이상 오토바이 라이더를 주요 타깃으로, ABS플라스틱으로 만든 헬멧은 60만 루피아(5만원) 이상, 유리섬유나 카본으로 만든 헬멧은 250만 루피아(21만원) 안팎에 판매한다.

카본 헬멧이 가장 가볍고,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ABS플라스틱 제품 순으로 무거운데, 가벼울수록 가격이 비싸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저렴한 헬멧은 주차장에 세운 오토바이에 그냥 걸어두지만, 비싼 헬멧은 누가 훔쳐 가지 않도록 꼭 들고 다닌다.





공장 한쪽에 마련된 연구실에서는 헬멧을 높은 곳에서 떨어트려 강도를 특정하고, 뾰족한 것으로 뚫어보고, 턱 끈이 어느 정도 힘에 버티는지 실험이 반복되고 있었다.

헬멧을 접었다 펼쳤다 '부피'를 줄일 수 있으면 선풍적 인기를 끌겠지만, 안전성 확보가 안 돼 그런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강 대표는 "조코위 대통령이 우리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보고 정말 흥분됐다. 시장 점유율 1∼2위 업체가 아닌 중소기업 제품이라서 착용해준 것 같다"며 "지금의 기세를 이어가 5년 뒤에는 점유율 3위까지 올라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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