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패권경쟁, 국내기업에 불똥…中공장 첨단장비 반입 제동
"미국, SK하이닉스의 EUV 노광장비 중국 공장 반입 막아"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영신 기자 =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면서 그 불똥이 국내 반도체 기업에 튀는 양상이다.
로이터는 18일 소식통을 인용해 SK하이닉스[000660]의 중국 현지 공장 첨단화 계획이 미국의 제동으로 좌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장쑤성 우시의 D램 반도체 공장에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들여놓으려 했으나,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증대에 악용될 수 있다며 첨단장비 반입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EUV 노광장비 수입이 미국의 견제로 사실상 막히면서 중국 우시 공장 첨단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관계자는 "EUV 장비는 국내 도입도 아직 극초기"라며 "중국 우시 도입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SK하이닉스는 국제규범을 준수하면서 중국 우시 공장을 지속 운영하는 데 문제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UV 공정은 반도체 포토 공정에서 극자외선 파장의 광원을 사용하는 작업이다.
기존 불화아르곤(ArF)의 광원보다 파장의 길이가 짧아(10분의 1 미만) 반도체에 미세회로 패턴을 구현할 때 유리하고 성능과 생산성도 높일 수 있는 최첨단 공정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처음으로 이 장비를 경기도 이천 공장에 도입했다.
또한 ASML과는 2025년 12월 1일까지 EUV 장비 4조8천억원어치를 들여오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D램은 계속해서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EUV 장비가 공급되지 않으면 내년 연말, 그 후년에 주력 제품이 될 D램을 생산하지 못하게 돼 SK하이닉스의 경쟁력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가 요청한 영업 정보를 제출하는 등 충실히 협조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나서서 미국 정부에 이런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애꿎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국은 그동안 반도체 패권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쳐왔다.
미국은 최근 자국 기업인 인텔이 중국 청두에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생산을 늘리려는 계획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국 기술의 중국 이전을 봉쇄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보호주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또한 미 정부는 '병목 현상 해소'를 명분으로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에 반도체 재고, 주문, 판매 등 공급망 정보 설문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를 의식하면서도 중국 역시 중요한 시장이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5.1%에서 지난해 31.2%로 크게 상승했다.
올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0.22%와 약 37.8%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도 많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업계는 이번 사태가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에도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는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 대상 8개국 가운데 중국 승인만 남아 있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상황으로, 미중 패권 경쟁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