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벨라루스에 제재 강공…꼬이는 '난민사태'

입력 2021-11-16 15:49
EU, 벨라루스에 제재 강공…꼬이는 '난민사태'

벨라루스, 가스중단 위협 맞서…에너지난 EU 대책 한계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벨라루스가 중동 지역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데려와 폴란드 등 유럽연합(EU) 회원국 국경으로 몰아넣는 '난민 공격'을 감행한 데 대해 EU는 추가 제재 카드를 빼 들었다.

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15일(현지시간) 난민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의 '하이브리드 공격'에 가담한 개인이나 조직으로 제재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벨라루스 정부는 난민을 항공기로 태워 나른 다음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국경으로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고 EU는 지적한다. 이는 EU 체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하이브리드 공격 시도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원회는 벨라루스의 항공사, 여행사 임원과 이번 사태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벨라루스 정부 관리 30여명 등 제재 명단을 수일 내 확정, 공표할 예정이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벨라루스를 통해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EU 국가로 입국을 시도하는 중동발 주민은 계속 증가했다. 특히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3만 명 이상이 벨라루스와 폴란드가 맞닿은 국경을 불법으로 넘으려 한 것으로 파악된다.

벨라루스에는 현재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1만4천 명 정도가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벨라루스 정부가 이들을 폴란드 쪽으로 밀어낸다고 주장하면서 군 병력을 배치해 유입을 막고 있다.



EU는 벨라루스, 러시아, 터키의 항공사가 난민을 대규모로 실어나른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제재도 준비하고 있다.

EU는 오래전부터 벨라루스에 다양한 제재를 부과해왔으나 그때마다 벨라루스는 강경하게 맞서 이번에도 제재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스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EU 제재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하고 벨라루스는 난민 유입을 줄이는 한편 기존에 들어온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4년부터 벨라루스를 철권 통치하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대선에서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해 6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벨라루스 야당과 시위대는 부정 투표와 개표 조작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다며 수개월 동안 항의 시위를 벌였다. 대선 무효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탄압을 이유로 EU는 루카셴코 대통령을 포함해 벨라루스 인사 88명에 대해 EU 내 자산동결과 비자발급 금지 등의 제재를 가했다.

2010년 벨라루스 대선에서도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당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야당 대선 후보를 포함한 600여 명의 야권 인사가 대거 체포됐다.

당시에도 EU와 미국 등은 선거 부정과 야권 탄압을 이유로 루카셴코 대통령과 그 측근 인사들에 대한 제재를 부과했다.

지난 6월에 벨라루스 정부가 반체제 언론인을 체포하려고 전투기까지 동원해 EU 여객기를 착륙시키자 EU는 각종 수입 제한 등 포괄적인 경제 제재를 추가했다.

경제 제재에는 벨라루스의 주요 수입원인 석유, 석유화학 제품, 염화칼륨, 담배 등에 대한 거래 제한과 무기 금수 조치 등이 포함됐다.

EU의 경제 제재에 대항해 벨라루스는 자국 주재 EU 대표를 추방하고 EU 관계자의 입국을 금지했다. 또 EU가 옛 소련권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추진하는 'EU 동부 파트너십' 참여를 중단했다.



벨라루스는 EU가 추가 제재를 단행할 움직임을 보이자 유럽행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야말-유럽 가스관이 지나가는 경유국이다.

이처럼 벨라루스가 EU의 제재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러시아가 배후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가스 공급을 의존하는 EU의 대응책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푸틴 대통령이 14일 벨라루스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을 끊지 말아야 한다며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EU로서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번 국경 갈등의 배후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목했다.

그는 9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이고, 또 신제국주의적인 정책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최근 사례가 벨라루스의 공격"이라며 "루카셴코 대통령은 일선에서 러시아의 정책을 시행하는 사람이며 그 지휘자는 모스크바의 푸틴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의 일원인 벨라루스에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노골적으로 루카셴코 정권을 비호해왔다. 러시아는 EU와 미국 등 서방이 벨라루스에 친서방 정권을 세우려고 벨라루스의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서방과 냉전 이후 최악의 갈등을 겪는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서방과 대결 전선에서 '전초병'으로 활용하고 있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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