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시, 넥타이색만 배려했을 뿐 '인정사정 없었다'(종합)

입력 2021-11-16 17:56
수정 2021-11-16 18:46
바이든-시, 넥타이색만 배려했을 뿐 '인정사정 없었다'(종합)

서로 할 말 다한 화상회담 194분…미중 신냉전 반영

백악관서 캐주얼한 분위기…인민대회당서 기자회견식 좌석배치



(서울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한종구 김진방 특파원 = '21세기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중 관계가 충돌로 가느냐, 관리모드로 가느냐의 기로에서 열린 미중 영상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치열한 공방으로 전개됐다.

베이징 시간 16일 오전 8시 46분(워싱턴 시간 15일 오후 7시46분) 시작해 중간 휴식시간을 빼고 전반 1시간 56분, 후반 1시간 18분 합쳐서 총 194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치의 양보없이 자국 입장을 상대에게 전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붉은 색, 시 주석은 푸른색 넥타이를 각각 하고 나왔는데, 홍색은 공산당의 상징색, 푸른색은 미국 민주당의 상징색이다. 결과적으로 상대가 반가워할 색깔을 택한 셈이다.

하지만 배려는 거기까지였다.

자국 2인자 시절부터 소통해온 두 사람이지만 치열한 전략 경쟁을 벌이는 양국 관계를 반영하듯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 순서 때 짧은 인사를 교환한 뒤 곧바로 본론으로 돌입했다.

중국 중앙TV(CCTV)에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면한 적이 있는 두 정상은 화상으로 서로 얼굴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미국시간 15일 오후 7시46분, 중국시간 16일 오전 8시46분이었다.

이 때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지만 시 주석은 표정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먼저 발언한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대선 때 자신의 승리를 시 주석이 축하해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는 "다음번에는 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맞대고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시절이던 2011년 8월과 2013년 12월 베이징을 방문해 각각 부주석, 국가주석 신분이던 시진핑을 만났다. 시 주석이 작년 초 이후, 외국 방문을 하지 않고 베이징에서의 정상회담도 하지 않는 이른바 '외교적 칩거'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간 첫 정상회담을 비대면 형식으로 하게 된 데 대해 은근히 불만을 피력한 것으로 읽혔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의 냉각된 양국관계를 감안한 듯 이내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오랜 기간 서로 대화하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우리가 이렇게 격식을 차린 적이 결코 없었지만 좀더 격식을 갖춰 시작해야 할 것같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항상 매우 정직하고 서로 솔직하게 소통해 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궁금해하면서 그냥 떠나버린 적이 없었다"며 허심탄회한 소통을 제안했다.

이어 시 주석은 "종통 시엔셩, 니하오"(銃統先生, ?好)", 즉 "대통령님,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오늘 우리는 처음으로 영상 방식으로 만난다"며 "오랜 친구(老朋友)를 보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하고는 본론으로 직행했다.

모두 발언에서 두 정상은 "규칙에 따른 행동"(바이든), "공존·윈윈"(시진핑)"을 강조하며 이날 회담의 톤을 짐작케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경쟁이 필연적이니 규칙에 입각해 경쟁하자는 메시지를 던졌고, 시 주석은 미중 관계를 경쟁으로 규정하는데 반대하며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공존하자는 메시지로 응수한 것이다.



시 주석이 발언하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미소 띈 얼굴로 그의 발언을 경청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손으로 턱을 만지거나 메모를 하며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시주석은 시종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바이든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했다.

양측 회담 결과 발표에 따르면 모두 발언 이후 양측은 핵심 현안에서 정상외교 무대 치고는 매우 솔직하고 선명하게 자국 입장을 상대에게 알린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대만 해협에 걸쳐 현상을 변경하거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는 일방적 행동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연일 군용기를 보내고 있는 중국의 고강도 무력시위를 경고하며, 무력에 의한 대만 통일과 같은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또 '신장과 티베트, 홍콩에서 중국의 관행은 물론 더 광범위한 인권에 대한 우려'를 제기함으로써 중국이 핵심이익, 중대 관심사 등으로 규정한 '역린'들을 하나 하나 건드리고 넘어갔다.

시 주석은 더 선명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대만 당국이 미국에 의지해 독립을 도모하고, 동시에 미국 일부 인사는 의도적으로 '대만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 해협 정세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며 미국의 책임을 거론했다.

이어 "이런 추세는 매우 위험하다"며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며,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에 타 죽는다"는 정상회담 무대에서 듣기 어려운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표현은 '완화자필자분(玩火者必自焚)'이라는 관용어로 '자업자득'을 뜻한다.

관용어의 '비유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군사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대만 상황을 감안하면 '타 죽는다'는 표현의 어감을 충분히 의식하고 쓴 말로 볼 수 있었다.

회담 상황을 잘 아는 미측 관계자는 두 정상이 미리 준비한 발언록에 구애받지 않고 발언했으며, 대만 문제를 놓고는 예정한 것 이상으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미국 측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등이 배석했다.

중국 측에서는 류허 국무원 부총리,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셰펑 외교부 부부장 등이 배석했다.

한편, 양 진영의 분위기도 자못 달랐다.

미측은 백악관 웨스트윙의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 바로 옆에 있는 회의실인 루스벨트룸에 자리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테이블 상석에 앉고 테이블 주변으로 참모진이 앉는 비교적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반면 중국 측은 중대 국가회의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내 '동다팅(東大廳·동쪽 홀)'에서 긴 테이블을 설치해 둔 채 기자회견을 하는 듯한 형태로 회담에 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동시에 자국민에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한 배치였다. 시 주석이 가운데 앉고 좌우로 참모들이 배석했다.



아울러 중국은 회담 종료 후 채 30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신화통신과 CCTV 등 관영매체를 통해 시 주석 발언 내용을 중심으로 회담 결과를 속속 공개했다.

회담 후 양측간 조율을 거친 뒤 최소 수시간 후 결과를 발표하는 보통의 정상회담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최근 중국은 중요한 미중회담 직후 이번처럼 신속하게 결과를 발표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내러티브'(narrative·사안에 대해 특정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를 선점하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양 정상은 각자 자국내 중대 현안들을 마무리함으로써 어깨를 가볍게 한 상황에서 회담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전 자신이 역점 추진해온 인프라 예산법안을 서명했다. 시 주석은 지난 11일 자신의 장기집권 명분을 부각한 '역사결의'가 채택됨에 따라 국내 정치적 입지가 한층 더 강화됐다는 것이 중평이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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